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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PC ‘디가우징’, 공문서 훼손차원 처벌해야이수기(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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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03  17:4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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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기억을 지배한다. 기록은 오해의 소지를 없애주고 선의의 피해자를 가려낸다. 그래서 기록은 짧게는 10년, 20년, 길게는 100년, 200년, 수 천 년 후에는 역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가 출범 때 전임 박근혜 정부한테서 넘겨받은 청와대 공식 문건이 거의 없었다 한다. 문서가 텅 빈 ‘깡통 컴퓨터’만 남겨졌다는 얘기다. 후임 정부가 전임 정부 기록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박근혜정부도 출범한 2013년에 전임정부의 기록물 삭제로 논란이 일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재직 시절 사용하던 사법부 PC 하드디스크를 복구 불능 상태로 처리한 방법인 ‘디가우징’(degaussing)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면서 한 때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오르내리기도 있다.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를 삭제한 대법원은 규정에 따른 통상적 조치라고 해명했으나, 시점에 비춰볼 때 증거인멸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기록은 책임의 소재 명확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공기업 등 모든 관청은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 구현을 위해 이젠 결재문서를 비롯, 더 나아가 각종 회의록 및 보고서, 의사 결정 과정(이력)을 증명하는 문서, 각종 행사, 간담회 등의 내용도 일정기간 보존해야 한다. 행정의 투명성은 기록에서 나온다. 모든 행위를 기록으로 남겨 역사적, 증거적 가치로 활용돼야 한다. 모든 관청은 민원인과의 대담 내용까지 기록하고 공개해야한다. 기록성 못지않게 정부 업무의 투명성과 연속성도 중요하다. 관청기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행정을 처리한 축적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역사에서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조선왕조실록 등 기록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고위공직자들이 사용하던 컴퓨터의 ‘디가우징’은 비밀유지와 과거 비리 등을 들추어 내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관청이 중요문제의 컴퓨터입력 기록을 강한 자기장을 이용하여 하드디스크와 같은 전자기 기록들로 흔적을 없애는 것이 관행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사관이 왕의 주요회의에 참여해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한 것을 ‘사초’라 했다. 왕조차 함부로 들여다볼 수 없었을 만큼 공정성과 객관성에 만전을 기했다. 조선왕조실록, 의궤 등은 후세에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남겨졌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까지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방대하고 치밀하면서도 놀라운 기록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권력핵심과 관련된 자료의 경우 대부분 유실돼 일부 권력자들이 임기 말에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을 무더기로 삭제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이란 국가 최고권력기관에서 매번 민간 기업보다 못한 후진적인 업무 인수인계가 이뤄진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국가기록물을 관리하는 목적은 단지 역사적 기록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잇따르는 건 현행 대통령기록물 관리제도에 허점이 많은 탓이다.

관청 업무 투명성·연속성

조선의 화려한 기록문화 전통은 오히려 현대에 들어와 후퇴했다. 이승만 정권에서 김영삼 정권에 이르기까지 자체 기록을 거의 안 남겼다. 폐기에 더 급급했다. 하루빨리 법과 제도를 고쳐 인수인계 전에 관청이 기록을 삭제하는 폐단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현행법에 허점이 많은 탓이다. 모든 공직자가 사용하던 하드디스크인 컴퓨터는 ‘디가우싱’을 금지하는 법제정이 시급하고 폐기된 컴퓨터도 일정기관 보관해야 한다. 공직자의 컴퓨터 ‘디가우징’ 삭제는 공문서훼손차원에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강화해야 한다.

이수기(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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