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플러스 <203>하동 칠성봉
명산 플러스 <203>하동 칠성봉
  • 최창민
  • 승인 2018.09.06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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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호에서 바라본 칠성봉 줄기, 오른쪽 끝이 칠성봉이다.



늦여름 밤 마당에 놓인 평상에 누워 바라본 하늘에는 수없이 많은 별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이 별빛 무리는 암흑 속에서도 은백색의 띠를 이뤄 강처럼 흘렀는데 그 이름도 찬란한 은빛 강줄기 은하수이다. 이 빛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더 선명하게 보이는 별무리가 북두칠성이다. 흔히 시골에선 똥바가지라고 불렀는데 손을 내밀면 곧 닿을 것 같기도 했다.

우리의 산에는 별과 관련한 산 이름이 제법 있다.

한라산의 다른 이름 ‘운한가라인야’(雲漢可拏引也)는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을 만큼 높은 곳’이라는 의미다. 백록담이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으니 은하수 아니라 하늘의 모든 별빛을 끈다 해도 누가 시비할 일도 아니긴 하다.

한자 별 성(星)자를 쓰는 거창의 숙성산도 그 옛날 신라 도선국사가 산정에서 별점을 봤다고 한데서 이름이 왔다.

그러면 하동 칠성봉은 북두칠성과 관련이 있을까.

예부터 칠성이라는 이름은 민속신앙과 관련이 있다. 음력 칠월 칠석 날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칠성신(七星神)에게 무병장수를 비는 풍속이 있었다. 이를 다른 말로 ‘북두칠성 바라보기’라고 한다.

실제 칠성봉 북쪽 정수리에 지리산 천왕봉이 있다. 그렇다면 이 칠성봉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소원을 빌며 기도를 올리지는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

칠성봉(七星峰·900m)은 하동 청암면 중이리 악양면 신흥리 적량면 서리 일대에 걸쳐 있는 산이다. 이 산의 원류를 따라가면 배티재 회남재 거사봉 상불재 쇠통바위 삼신봉을 넘어 남부능선을 거슬러 지리산 세석 영신봉에 닿는다.

등산로: 금남회관→ 중이천→심답마을→칠성봉 산장 갈림길→체빠꼬미→산길→묵은 논밭→칠성봉→칠성봉능선→은적암 갈림길→은적암→금남회관 원점 회귀, 8㎞에 4시간 소요.



칠성봉 산행은 하동 악양면에서 오르는 코스와 청암면에서 오르는 두가지 코스가 있다. 취재팀은 많은 비가 내린 관계로 비교적 단거리인 청암면 하동호반 비바체 콘도를 지나 금남회관, 체빠꼬미에서 칠성봉에 올랐다.

산의 들머리에 있는 마을은 한자 칼검(劍)을 써 검남, 혹은 칼남재로 불리다가 훗날 금남으로 바뀌었다. 이곳에서 약 한 시간 동안 마을길과 들길, 물길을 따라 오르면 깊은 골이라는 심곡이 나오고 곧 칠성봉산장 갈림길에 맞닥뜨린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이 농골 혹은 논골로 불리는 농은동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 계곡 건너 산장방향으로 올라가면 체빠꼬미로 해서 칠성봉으로 간다. 심답(深畓)은 심곡(深谷·깊은 골)과 답동(畓洞·논골·농은동)을 아우르는 말이다.

여기까지는 산행이 아니라 아직 때묻지 않고 시골의 정취가 남아 있는 마을을 둘러보며 가는 트레킹으로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농은동은 청암의 3은 중 하나인 별천지다. 예부터 난리가 나면 사람들은 청암으로 몰려들었다. 은둔의 삶이 용이하면서도 병마와 화를 입지 않았기 때문. 험한 산중임에도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넓고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농업용수가 있었다. 그래서 논골 답동 농은동으로 불렸다. 정감록에 농은·고은·심은동을 청암 3은지로 기록한 것만 봐도 그야말로 길지, 병화불입지(兵火不入地)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실제 이곳 지형은 험난한데 농은동에 올라서면 거짓말처럼 넓은 구릉과 개활지(開豁地)가 펼쳐진다. 지금은 사람들이 도회지로 떠나버려 많은 농지가 묵정밭으로 변했지만 한국전쟁 때나 그 이전 사람들은 화를 입지 않았다.

본적이 금남인 김재운 씨는 산중에도 농지가 많아 천석꾼이 나는 곳이라는 말이 전해져 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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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을 건너 오르막길을 올라 서너가구가 살고 있는 체빠꼬미로 향한다.

이름도 예쁜 ‘체빠꼬미’의 말뜻을 알 길이 없는데 추측키로 빠꼼하다 의 준말 빠꼬미 앞에다가 곡물의 알갱이를 선별하는 농구인 체를 붙여 체빠꼬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 즉 인근의 전답이 많은 농은동과 달리 몇 가구 정도만 살 수 있는 체 구멍처럼 빠꼼한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체빠꼬미 뒤 작은 공터 왼쪽으로 난 산길이 칠성봉 가는 길이다. 직진해 가면 막다른 길 석계암 방향이다.

산길에 접어들어 마을 상수도 시설 왼쪽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정비가 잘 돼 있지 않아 풀잎과 나뭇가지가 얼굴을 스친다. 사람들이 기대고 살았던 흔적인 묵정밭도 나온다. 험한 지형에다 전답을 만들어야했으니 바위와 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낙엽송밭을 지나면 가끔 굵은 소나무도 보인다. 산길 주행 30분 만에 능선에 올라선다. 잔뜩 흐린 날씨, 맞은편 하동호가 운무에 젖어있다. 그 뒤 산비탈이 섬진강과 낙동강을 가르는 낙남정맥이다. 정맥을 기준으로 청암 계곡의 모든 물은 섬진강으로 흘러 큰 바다로 나간다.

체빠꼬미에서 1시간 30분 만에 칠성봉 정상에 닿는다. 구름과 소나기, 아쉽게도 조망이 없다. 맑은 날 이 산줄기는 삼신봉을 넘어 지리산 세석 영신봉까지 보인다. 뒤편에 악양면 평사리 들녁과 섬진강을 비롯, 강 너머 백운산이, 남쪽하늘에 진주 월아산, 사천 와룡산, 남해 금산 하동 금오산과 바다가 조망권이다.

칠성봉에는 옛날 가뭄이 심할 때 악양 적량의 3개면 주민들이 올라와 다함께 축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불을 피웠던 불구덩이가 지금도 산정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남아 있다. 일부에선 이를 금오산에서 연결되는 봉화대라고 하는데 이는 기록에 나와 있는 경남의 5개 봉화대 경로 상 맞지 않다고 한다.

청암 사람들은 칠성봉의 옛 이름을 당재로 기억하고 있다. 660년 백제 멸망 후 당 군사들이 이곳에 주둔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한자 집당(堂)를 써 봉홧꾼의 집이 있어 당재라고 불렀다는 설 등이 있다.

칠성봉을 한자 칼 검을 써 검남산이라고 부른 흔적도 있다. 하동군지에 신라 마지막 경순왕을 모신 경천묘를 설명하는 글에 ‘경천묘는 청암면 신기 검남산 하에 있으니…’ 라고 돼 있다. 오기가 아니라면 칠성봉을 말한다.

정상에서 왼쪽으로 돌아 칠성봉 능선을 따른다. 중간에 로프가 있어 의지하면서 내려갈수가 있다. 빗길, 낙엽길이 미끄러워 주의해야한다.

은적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선다. 직진방향은 평촌으로 떨어진다. 대밭을 비켜 돌고 작은 계곡으로 내려서 은적암(隱寂癌)주차장을 지나 금남회관에 닿는다.

정북 천왕봉의 칠성신에 무병장수를 빌었다는 칠성봉 산 이름의 또 다른 유래는 하동 쌍계사 맞은편 칠불사로 넘어간다. 김수로왕 허황옥의 일곱 왕자가 이곳 칠성봉에 잠시 기거하다 칠불사로 건너가 수도한 후 성불했기 때문에 칠성봉이라는 얘기다. 작고 평범한 산 이름 하나에도 여러 의미가 담긴 걸 생각하면 선인들의 지혜에 새삼 놀란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칠성봉 줄기에서 만난 아름다운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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