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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단상] 오래 살아갈수록<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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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09  18: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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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많아지면 고향을 그리워하고 종교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한다. 누구의 인생이든 어릴 때에는 호기심의 계절이었고, 청년이 되었을 땐 사랑과 야망의 계절은 아니었을까? 인생 불혹이 지나면서 부터는 성취의 계절인 듯 사람들은 그쯤의 나이가 되고서부터 비로소 뭔가를 이룩하려고 하지 않는가. 자신이 바라던 꿈을 위해 현실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시기도 바로 그때부터이기도 하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 예순이 지나면 지난날 꿈을 위해 분주했던 그 시절에 대해 반성의 눈길을 던져보는 사색의 계절일지도 모른다. 일흔의 세월이 흐를 때쯤에는 사색이 깊어져 삶에 대한 참된 가치를 논함에 있어서 경륜이 진실로 통하는 때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든이 넘어서고 아흔이 지나면 죽음과 죽음 저편의 생을 위해 아름다운 겸허로 무릎을 접게 되는 종교의 계절이며,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아닌 그저 덤으로 살아가는 나이가 아닐까 한다.

나이가 많을수록 누구나 지난날의 야망을 생각하게 되듯이, 자신의 지난 세월도 좋은 삶은 아니었을까 하고 의문을 던지게 된다. 그러나 작고 크기의 차이일 뿐이지 누구나 다 열심히 살아온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인생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이가 들면 지난날을 생각하게 되고 또 성찰을 통해서 평범한 진리도 깨닫게 된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도 느낄 때쯤 땀으로 얼룩진 지난날의 때 얼룩을 씻어내며 반복된 일상을 줄여가는 것이 노년의 삶일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 일상생활의 모든 일을 조끔씩 줄일수록 자신과의 만남은 자연히 잦아들게 된다. 그때부터는 건강을 핑계 삼아 등산을 한다거나 아니면 취미활동을 하면서도, 무엇인가를 열심히 움직이게 된다. 아니 누구보다도 바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라는 듯 남들이 믿어주길 바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간다는 구실로 자신을 칭찬하며 생활하는 삶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오십대에는 참으로 좋은 시절이었고, 예순이 지나 일흔의 시절이 흐를 때는 모든 것이 어떠했다고 평가하면서 말이다.

여든이 넘어서면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다소곳이 두 손 마주하여 기도하는 자세로써 윤회를 믿으며 비로소 고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것이 인생이다. 아흔까지 살게 되고, 또 백대로 이어져 살아가는 삶이라면 인생은 정녕 아무것도 아닐 듯. 다만 덤으로 살아가는 나이일 수밖에 없다. 그땐 눈빛이 흐릴지라도 생을 다하는 그날까지 자신과 만날 수 있는 삶이되어 오직 곱게 늙어갈 수 있기를 바라자.
 
<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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