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병든 정치에 약은 없을까
[경일포럼] 병든 정치에 약은 없을까
  • 경남일보
  • 승인 2018.09.0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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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위(칼럼니스트)
“나라는 갈팡질팡 어지러운데/뉘라서 나라 건질 충신이 될꼬/서울을 떠난 것은 큰 계획이요/회복은 그대들께 달려 있나니/국경이라 달아래 소리쳐 울고 /압록강 강바람에 마음 상하네/신하들아 오늘이 지난 뒤에도 /또다시 서인 동인 싸우려느냐:이은상 역).”

이 시는 임진왜란 때 선조가 서울을 등지고 의주로 피란 가서 지은 시다. 당쟁이 얼마나 심했으면 백척간두(百尺竿頭)의 피란 중에도 이런 시를 남겼을까 싶다. 선조 초에서부터 시작된 당파간의 피를 말리는 대립을 누구보다도 피부로 느끼면서 정사를 보았을 임금의 시다.

임진왜란(壬亂)이 일어나기 바로 1년전인 1591년 선조 24년! 모처럼 일본의 정세를 알아보기 위해 통신사를 보냈더니 다녀온 신하들의 보고내용이 동서로 갈리었다. 서인(西人)인 정사(正使) 황윤길(黃允吉)은 임금에게 보고하기를 “왜적은 반드시 침범할 것입니다”하였고 동인(東人)인 부사(副使) 김성일(金誠一)은 “일본은 아직 군사를 일으킬 기색을 보이지 않으니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선조가 물었다. “수길(秀吉)의 모습이 어떠하던가?” 황윤길은 “수길이의 눈에 광채가 있으니 반드시 담력과 지략이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한데 반해 김성일은 “그 눈이 쥐와 같으니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은 서장관으로 따라간 허성(許筬)에게도 물었다. 허성은 중립적인 입장이었으나 황윤길의 말에 약간 기울어 있었다. 이를 다 듣고 난 선조는 “사람마다 의견이 제각각이니 왜 그런 것인가?”하고 한탄하였다는 기록도 우리는 본다.

전쟁전이나 전쟁 중이나 당쟁은 변함없이 기승을 부렸다. 한때 한창 인기를 끌었던 영화 ‘명량’에서 보여주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의 수난도 바로 당쟁 때문이 아니었던가! 원균은 서인이었고 충무공은 동인이었던 데에서 생긴 알력이 결국은 충무공을 백의종군케 한 원인이 된 것이기에 말이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충무공을 해상에서 몰아 내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던 일본의 간계와 어떻게 해서든지 충무공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끌어 내리려고 하는 벼슬아치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물이 결국은 충무공의 백의종군으로 귀착된 것이다.

임금은 그래도 행여나 과연 이순신의 죄상이 정말 사실인지를 알기위해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오늘의 교수) 남이신(南以信)을 시켜 조사토록 했으나 결과는 역시 당쟁이었다. 남이신이 벌써 충무공의 반대파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선조에게 돌아온 보고는 그동안 들어 왔던 탄핵 내용과 같은 것이었다.

임란 직전에 일본의 대사로 조선에 왔던 현소(玄蘇)는 동평관에 이런 시를 남겨놓았다. “매미는 울기만 하느라 제비가 저 잡으러 오는 것을 모르는구나/고기는 놀기만 하고 갈매기 잠자는 것만 좋아 하는구나/이 땅이 어느 땅이더냐 다른 어느 때/이 땅에서 거듭 연회를 열 것이다./(연려실기술)”

문자 그대로 나라가 풍전등화인데도 나라를 생각하기 보다는 파당의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내부분열과 투쟁을 일삼는 것을 남들이 먼저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지금이라고 과연 그 당시와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나라안팎의 주변 정세는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는데 우리 정치는 어제도 오늘도 허공을 맴돌고 있다. 무슨 병이 들어도 잔뜩 들어 있음이 분명하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0년대 후반에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촉한(감기)에는 뜨끈한 콩나물을 마시고 땀을 낼 것이고 곽란에는 삼 잎사귀를 다려 마실 것이다. 해소에는 배숙이 잘 듣나니 시험해 볼 것이며 어깨나 허리에 통증이 있는 경우에는 쑥찜이 좋고 힘부침에는 야산에 흔히 있는 익모초를 써볼 일이다” 이정도로 될까 모를 일이다.

 
김중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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