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대첩광장 조성지 '외성' 드러났다
진주대첩광장 조성지 '외성' 드러났다
  • 강진성
  • 승인 2018.09.1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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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축성, 임란 이전 성벽돌도 발견
흙더미에 묻혀있던 진주성 외성 일부가 100년 만에 햇볕을 만났다.

진주성 촉석문 앞 진주대첩기념광장 조성 예정부지에 U자형 외성이 발견됐다. 현재까지 발굴된 추정 규모는 길이 60m 이상, 최고 높이는 3m 이상이다. 발굴 상황에 따라 외성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11월 시굴조사에서 기단석(건물 기초가 되는 단을 쌓는 돌)이 발견되면서 외성 존재 가능성이 제기됐다. 올해 4월부터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뤄지면서 외성이 조금씩 드러났다.

발굴된 외성은 조선후기 복원된 성벽으로 추정된다. 진주성 외성은 임진왜란 당시 허물어졌다. 이후 다시 쌓은 성벽이 이번에 발굴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발굴된 성벽은 학계에서도 놀랄 만큼 상태가 좋은 편이다. 한 관계자는 “지난해 기단부가 발견됐을 때만 해도 이정도 외성이 나올 줄 몰랐다”며 “땅속에 매립돼 있었던 덕분인 지 보존상태가 예상보다 훨씬 좋다”고 밝혔다.

외성은 저지대에 위치한 덕분에 허물어지지 않고 보존된 것으로 보인다. 송영진 경상대학교박물관 학예팀장은 “외성은 1900년 초 일제강점기부터 조금씩 허물어졌다. 일본인들이 도시화를 위해 성벽을 허물고 근대식 건물을 지었다. 대사지에는 허문 성벽으로 메웠다고 연구되고 있다. 외성은 1930년대 중후반 모두 허물어 진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발굴된 외성은 남강변 저지대에 위치해 있어 다행히 허물리지 않고 그 위에 건물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특히 성벽 하단부에는 임진왜란 이전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돌이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화재 관계자는 “외성 하단부에는 축조된 돌과 시기상 다른 것이 발견됐다”며 “임진왜란으로 허물어지기 전부터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후 외성에 남아있던 돌 위에 다시 성벽을 쌓아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번 외성 발굴로 학계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송영진 학예팀장은 “조선시대 축성 기법을 알 수 있고 외성 복원을 위한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는 점, 외성 구간을 파악할 수 있는 점, 진주대첩 등 역사적 흔적이 남은 유물이 발견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발굴된 성벽은 축조된 돌 사이 빈 공간을 찾기 힘들 정도로 견고하게 쌓여 있다. 또 진주성도(晉州城圖)와 일제강점기 당시 사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외성 구조를 파악할 수 있어 진주성을 비롯한 외성 복원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발굴조사단은 11일 오후 3시 시민에 발굴현장을 공개하고 발굴 진행상황을 설명할 예정이다. 
강진성기자 news24@gnnews.co.kr

 
2018090601010002273_진주성외성발굴현장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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