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불타 시민 성금 모아 재건
지금까지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촉석루 중건 당시 사진과 기록물이 6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세상에 나왔다.
진주문화원은 지난 1960년 진주 촉석루 중건의 주역인 강용성 당시 진주교육감(2대)의 장손 강재욱(67·인천거주) 씨가 촉석루 2차 중건 때 사진과 기록물을 기증했다고 12일 밝혔다.
지난 6일 강 씨가 기증한 촉석루 관련 기록물은 대들보 채취 모습, 상량식에 참여한 인파 등 촉석루 중건 당시의 모습을 생생히 담고 있다.
촉석루가 세워진 것은 고려 고종 28년(1241) 때 일이다. 창건 이후 6번의 중수와 2번의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2번의 중건 중 첫 번째는 고려 말인 1379년 왜에 의해 불탄 것을 재건 했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1960년 재건한 것이 두 번째 중건이다.
한국전쟁 당시 1950년 9월 1일 소실된 의암 위 촉석루 부지는 빈터로 남게 됐다. 이를 안타까워한 시민들은 전쟁 직후 궁핍한 시기에도 불구하고 촉석루 중건에 뜻을 뭉쳤다. 총 7700여 만환의 공사비가 투입된 촉석루 중건사업은 진주시교육위원회가 주도해 착공은 1958년 3월, 준공은 1960년 11월에 완료됐다. 전후 건축공사로는 최대 규모였다.
당시 진주시교육위원회 서무계장이었던 이정희 씨에 따르면 촉석루 중건 사업에 강용성 진주교육감이 사업의 주체로서 공사업무를 도맡았다. 이와 함께 진주시에서 진주고적보존회를 설립해 교육위 주도 아래 사업을 주관했다.
국비가 내려왔지만 부족한 비용은 진주시에서 도내 각 시군에 일정 금액 씩을 할당해 협조를 부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목표액을 완납한 지역은 진양군(당시 30만환) 한 곳 뿐이었다. 다급해진 강 교육감은 김택조 당시 진주시장, 박세제 고적보존회 상무이사 등과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중건 성금 모금활동을 벌였다. 이에 도내 초·중·고교생 등 시민의 성금이 모여 공사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1960년 11월 수십만 진주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낙성식이 개최됐고 이후 현존하는 촉석루의 형태가 이어져 오고 있다.
강용성 교육감의 손자 강재욱 씨는 “조부께서는 평양에서 진주로 내려와 해방 당시 진주교육의 초석을 다진 분이다. 진주의 상징인 촉석루 중건을 주도하면서 모금 활동 등 모든 분야에 직접 발로 뛰셨다. 자료는 유품을 보관하던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바닥에 봉투가 떨어져 있는데, 봉투 겉면에 쓰인 ‘촉석루 대들보의 운반 기록 사진’이 할아버지의 필체였다”고 전했다.
이에 김길수 진주문화원장은 “강 씨가 조부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유산인 촉석루 재건 기록물을 진주시민에게 돌려준 것에 감사하며, 차후 이 기록물들을 진주시민에게 공개해 촉석루 국보환원운동의 소중한 증거로 삼을 생각이다”고 계획을 밝혔다.
김귀현기자 k2@gnnews.co.kr
◆촉석루 창건, 중수·건 기록
1241년(고려 고종 28년) 김지대 진주목사 창건
1322년(충숙왕 9년) 안진 진주목사 재건
1379년(우왕 5년) 왜 침략으로 소실
1413(조선 태종 13년) 권충 진주목사 중건
1491년(성종 22년) 경임 진주목사 중수
1583년(선조 16년) 신점 진주목사 중수
1593년(선조 26년) 왜적 침략으로 화재
1618년(광해군 10년) 병사 남이홍 중건
1724년(경종 4년) 병사 이태망 중수
1950년 6·25 전쟁으로 소실
1960년 진주고적보존회 중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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