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남인수, 예술과 친일의 고뇌
[아침논단]남인수, 예술과 친일의 고뇌
  • 경남일보
  • 승인 2018.09.1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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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임식(LH 지역발전협력단장)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月色)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1927년 만들어져 실질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로 평가받는 ‘황성옛터’다. 개성이 고향인 전수린이 작곡하여 고향 후배인 여배우 이애리수에게 준 이 곡은 당시 공연장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다. 황성(荒城)은 폐허로 남은 개성을 의미하지만 실제 고려 광종은 개경의 왕성 외곽을 4.7㎞의 성벽으로 둘러싸고 이를 황성(皇城)이라고 했다. 이 노래를 끔찍이 사랑한 가수는 가요황제 남인수다. 그는 음반취입은 물론 자신의 무대마다 꼭 이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를 부르고 사랑, 결혼, 출산으로 완전히 종적을 감춘 이애리수를 대신하여 남인수가 국민의 심금을 울려준 것이다. 1962년 6월 26일 지병인 폐결핵으로 너무나 아까운 44세에 임종을 맞은 남인수는 많은 동료가수들이 지키고 있는 가운데 이난영에게 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

남인수의 본명은 최창수(崔昌洙)였으나 어머니 장하방이 강씨 집안에 개가(改嫁)하여 강문수(姜文秀)로 개명했다. 진주시 하촌동에 그의 음택이 화려하게 조성되어 있고 그 아래 생가터가 있다. 그러나 생가터는 문화재 지정, 취소를 겪었고 그가 그 동네에 살았다는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남인수는 어릴 때 동네친구들의 따돌림을 받았지만 누구보다 애향심이 강했다. 1955년 지방공연차 진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남인수는 가슴의 한을 덜고자 전남 장흥이 고향인 작곡가 손석우에게 진주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들려주며 진주 노래를 부탁했다. 그래서 탄생한 곡이 ‘내 고향 진주’다. “삼천리 방방곡곡 아니 간 곳 없다마는, 비봉산 품에 안겨 남강이 꿈을 꾸는 내 고향 진주만은 진정 못해라......” 10년만에 고향에서 공연하는 남인수는 이 곡을 불러 뜨거운 앵콜을 받고 세 번이나 연이어 불렀다. 이어 이재호 작곡 ‘남강의 추억’, 이운정 작곡 ‘진주라 천리길’도 연달아 불러 고향 팬들을 열광시켰다.

‘진주라 천리길’ 작사자는 이가실이다. 이가실은 ‘알뜰한 당신’, ‘선창’, ‘낙화유수’, ‘꿈꾸는 백마강’ 등을 작사한 월북작가 조명암의 또다른 예명이다. 그가 일본 와세다대학 불문과에 유학할 때 극단적인 가난 때문에 영양실조로 쓰러진 적이 있었다. 병실을 방문한 동료 연극회원 중 하재숙이란 여인에게 한눈에 반하고 사랑을 시작했다. 두 연인은 방학 때 하재숙의 고향을 방문하기도 했다. 남강변 빨래터, 칠암동 과수원길을 걸었다. 유부남 이가실은 비련의 고통을 견딜 수 없어 1941년 대학 졸업식날 하재숙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가 이별의 아픔을 노래시로 펼쳐낸 것이 바로 ‘진주라 천리길’이다.

남인수는 마치 테너 가수처럼 부드럽고 섬세하게 노래한다. 음역도 매우 넓어 저음에서 불안하지 않고 고음에서 강한 힘을 내 뿜는다. 목소리를 완벽하게 구사하여 최강음과 최약음을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점에서 이태리 벨칸토 창법을 구사한다는 평을 받는다. 그의 미성(美聲)은 타고난 재능이지만 남강변에서 피를 토하며 훈련한 결과이기도 하다. 당구 1000의 고수, 숱한 여성들의 사랑을 받은 낭만가객 남인수가 국민가수의 갈채를 받을 때 폐병의 그림자가 늘 따라 다녔다.

사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의 예술에는 친일의 유령이 아른거린다. 그의 병수발을 든 마지막 연인 이난영은 ‘목포의 눈물’을 부른 스타이지만 친일가요를 불렀음에도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다. 지속성, 반복성, 적극성이라는 기준 때문이었다. 남인수는 ‘그대와 나’, ‘이천오백만 감격’, ‘혈서지원’ 등 친일가요를 부르고 ‘성난 아시아’라는 친일연극에도 출연하여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해방 후 그가 민족과 역사 앞에 반성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남명의 후예, 충절의 도시 진주에서 친일과 예술의 모순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최임식(LH 지역발전협력단장)
 
최임식 LH지역발전협력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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