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와 소비자의 상생(相生)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생(相生)
  • 경남일보
  • 승인 2018.09.1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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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대(수필가)
아직도 태양의 기운이 성하게 남아있지만 아침저녁 잔약한 햇살은 이미 깊은 가을 향기를 만들고 있다. 유난스레 긴 가뭄과 숨이 막히는 폭염으로 여름 한 철을 보내고 나니 그렇게 간절했던 가을이 너무도 빠르고 쉽게 찾아오더니 가을답잖게 많은 비가 내렸다. 백로를 지나 내리는 비는 오곡백과 어디에도 이롭지 않다고 하지만 올 여름 가뭄에 시달린 탓인지 연 이틀을 내리는 가을비도 그렇게 원망스럽거나 귀찮지가 않다. 빗방울이 매달린 고추밭은 길게 자란 잡초들 사이로 아직 따지 않은 붉은 고추와 연녹색의 풋고추가 어우러져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빗물에 날개가 젖은 고추잠자리는 시간에 몸을 맡긴 채 웅크리고 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정리(整理)의 순간을 맞고 있을 터다.

지방 출장이 있어 새벽 진주 중앙시장을 들렸다. 바뀐 잠자리가 낯설어 일찍 깬 탓도 있지만 시원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살아 숨 쉬는 도시의 생동감을 느끼고 싶어서다. 가을비가 내리는데도 철지난 우엉 잎, 어린 배추, 열무 등 채소류 및 햇과일이 부지런한 장꾼들과 시장을 장식하고 있다. 지난 주 서울의 한 마트에서 포기당 만원이던 배추를 시장상인에게 조심스레 물었더니 가격이 별반 차이가 없다. 폭염으로 보기 어렵던 애호박도 서울의 마트에서 4000 원이라 혀를 내둘렀던 생각이 나 시장을 몇 바퀴 돌면서 호박을 찾았지만 역시 씨가 말랐다. 어렵사리 찾은 아이 주먹만 한 애호박 하나가 3000 원이라 호박잎 한 묶음을 1000 원에 산 뒤 시장을 나왔다. 정보가 풍부한 현대 소비자는 현명하고 이기적이다. 가격이 비싸다싶으면 다소 먹고 싶더라도 사지 않는다. 날씨도 환경도 힘든 상황에서 어렵게 키운 채소나 과일이 판매되지 않으면 생산자도 소비자도 다 같이 고통스러워진다.

추석이 바로 코앞인데 정부 관련부처는 밥상물가는 전혀 관심도 없는듯하고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도 심상찮은 물가 오름에 대한 경고음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 정치권은 특정지역아파트 가격 안정화 대책이나 평양 남북정상회담 등에 함몰(陷沒)되어 정작 일반서민들 생활 고(高)물가에 따른 어려움을 살피는데 소홀하지 않나싶다. 제대로 된 주택정책도 한반도의 평화구축도 좋지만 소득주도성장이나 주 52시간근무, 최저임금인상 등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과 해외 식품의 범람 속에서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농어민과 가난한 소비자가 상생(相生)할 수 있는 상호 보완적 시스템을 고민해야한다. 생산자가 보호되지 않으면 소비자도 보호받지 못한다.

 
이덕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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