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17]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17]
  • 김귀현
  • 승인 2018.09.1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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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열사 기념관
▲ 헤이그 특사. (왼쪽부터) 이준, 이상설, 이위종.


‘헤이그’로 더욱 잘 알려진 도시 덴하흐는 네덜란드 정부 소재지로 수도 암스테르담을 대신하는 정치,경제의 중심지다. ‘헤이그(The Hague)’는 영어식 이름으로 네덜란드어로는 ‘덴하흐(Den Haag)’라고 하며 정식 명칭은 ‘백작가의 사유지’라는 뜻의 스흐라벤하허(‘s-Gravenhage)이다.

헤이그는 국가 간의 분쟁을 처리 하는 국제사법재판소, 상설중재재판소가 위치하고 있으며, 1899년과 1907년에 열린 만국평화회의를 비롯해 많은 국제회의가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2차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되었던 1907년 세 명의 한국인이 헤이그역(현재 덴하흐HS역)에 도착했다. 지금은 기차역 주변과 도시의 모습이 당시와는 사뭇 많이 달라졌지만 낮선 화란 땅에 막 발걸음을 내딛은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뒤를 따라 가본다.

기차역에서 곧장 직진하여 10여분을 걷다 보면 한 건물에서 펄럭이는 태극기를 만날 수 있다. ‘YIJUN PEACE MUSEUM(이준 평화 뮤지엄)’이 쓰여 있는 건물 현관에서 초인종을 누르면 이곳에 머물렀던 3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기차역을 빠져나와 세 명의 한국인이 도착했던 이 건물은 그 당시에는 호텔이었다. 서울을 떠나 온지 두 달 간의 긴 여정 끝에 호텔 드 용(Hotel de Jong) 이라는 간판을 발견했던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낮선 땅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앞으로 이 곳 헤이그에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책임감도 같이 느꼈을 듯하다. 세 사람은 곧 태극기를 호텔 입구에 걸어놓고 그들의 임무를 시작했다.

헤이그 땅을 밟은 세 명의 한국인은 고종의 밀령을 받은 헤이그 특사 이상설, 이 준, 이위종이었다.

러일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제는 대한제국을 식민지화 하려는 본격적인 계획을 세웠다.

전쟁 중 미국과 가쓰라-태프트밀약을 체결하여 사전 묵인을 받았고 이어 영국과 제2차 영일동맹을 체결하여 우리의 주권을 침해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 받았다. 일제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을사조약의 내용에는 그들의 욕심과 한반도를 삼키겠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조약에 따라 한국은 일본에게 외교권을 박탈당했고 영국, 미국, 독일 등의 주한공사들이 모두 본국으로 돌아갔다. 을사조약에 대한 부당함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유생과 전직 관리들은 상소문을 올렸지만 별 뜻을 이루지 못했고 전국 각지에서는 의병활동이 전개 되었다.

나라를 빼앗기는 동안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었던 고종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비밀스러운 작전 하나를 계획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고종은 자신을 대신하는 특사를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파견코자 했다. 회의에 참석하는 수많은 열강들을 상대로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알리고 조약을 파기하여 외교권을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전 의정부 참찬 이상설, 전 평리원(대한제국 당시 최고법원) 검사 이 준,전 주러 공사관 참서관 이위종을 특사로 임명했다.

고종에게 특사 신임장과 밀령을 받은 이준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갔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건너가 이상설과 합류했다. 그 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위종이 합류하여 1907년 6월 이준열사가 서울을 출발한지 65일만에 헤이그특사가 네덜란드 땅을 밟았다. 그들도 예상 못했던 길고 긴 여정이었으리. 이후 세 사람은 세계 각국의 대표들에게 을사조약이 한국의 뜻이 아니라 일본의 강요에 의한 것임을 명백히 하고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 이준열사기념관의 외부 전경. 현관 옆에 위치한 초인종을 누르고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기념관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끝내 회의장의 문턱을 넘지 못하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2세가 제청한 제1차 만국 평화회의는 1899년 5월 첫 모임을 갖게 되었다. 만국 평화회의는 전쟁과 평화에 관한 의견을 나누기위해 전 세계 대표가 한 자리에 모인 첫 번째 회의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컸지만 회의자체에서는 커다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 후 다시 열린 제2차 만국 평화회의는 1907년 6월 15일부터 약 4개월에 걸쳐 진행되었고 45개국에서 온 230여명의 각 국 대표들이 모였다. 그러나 한국은 회의 참석국 명단에 명백히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석에 실패 했다. 청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이 당시 러시아 세력을 견제하고 있던 영국과 손을 잡으며 영일동맹을 체결한 것이 한국의 회의 참석에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총16명의 관료와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고문들을 초빙한 일본은 영국과 합세 하여 단 3명으로 이루어진 헤이그 특사를 회의장에 입장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후 헤이그특사는 을사조약의 무효와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는 내용이 담긴 ‘한국의 호소’라는 항의문을 만들어 회의에 참석 시켜줄 것을 요청했으나 열강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고, 이위종이 세계 각국의 언론이 모인 신문 기자단 회의에서 ‘한국을 위한 호소’라는 주제로 연설하며 국제적 관심과 여론을 환기 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끈질긴 노력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끝내 회의장에 입장 할 수 없었고, 1907년 7월 14일 이 준 열사가 그가 머물고 있던 호텔방에서 순국했다.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의문의 죽음이었지만 홧병에 의한 분사, 자살설, 독살설 등 여러 주장이 제기 되고 있다.

헤이그 특사에 대한 보도가 널리 퍼지자 일본은 고종을 압박하다가 이 사건을 구실로 끝내 황제 자리에서 강제 퇴위시켰다.

1993년 설립된 사단법인 이준 아카데미는 광복 50주년과 이준 열사 순국 88주기를 기념하며 1995년 8월 5일 헤이그에 이준 열사 기념관을 개관했다. 2017년에는 헤이그 특사 100주년과 이준 열사 순국 100주기를 맞아 확장 재개관하며 헤이그를 찾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인방문객도 맞이하고 있다.

이준 열사 기념관은 열사가 순국한 곳을 보존하고 있는 역사적 사건의 산실이다. 또한 유럽 유일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로써 이준열사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정의와 평화사랑 정신을 함양하는 역사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다.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고 땅이 작고 사람이 적어도 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일성 이준열사 유훈 중)

기념관 입구에 걸려있는 이준 열사의 유훈은 이 곳을 찾은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되어 감동을 선사한다. 남한보다 작은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이 곳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마음이 느껴지지 않을까?

주소: Wagenstraat 124A, 2512 BA, Den hagg, 네덜란드
운영시간: 월~금요일 오전 10시 30분~오후 5시, 토요일 오전 11시~오후 4시(일요일 휴관)
홈페이지: http://www.yijunpeacemuseum.org/
입장료: 성인 5유로, 학생 3.5유로



고종황제가 이준에게 수여한 헤이그 특사 신임장(1907년 4월 20일).
이준 열사가 순국한 호텔 방. 당시 헤이그 특사가 머물렀던 호텔은 현재 이준열사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1993년 설립된 사단법인 이준 아카데미는 광복 50주년과 이준 열사 순국 88주기를 기념하며 1995년 8월 5일 헤이그에 이준 열사 기념관을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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