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의 발굴, 진주성 외성을 찾아서
100년만의 발굴, 진주성 외성을 찾아서
  • 김지원 기자
  • 승인 2018.09.2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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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이올시다. 아니 본성명으로 치자면 '경상우도병영성'이지요. 이 몸은 원래 고려시대 말엽에 흙성으로 쌓였소. 고려 우왕 때인 1377년 무너진 흙성을 돌로 다시 쌓아 1380년에 새로 완성하였소.
고려가 망하고 조선시대가 들어서, 여러번 고쳐 짓기도 했소. 1591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에 새로이 성을 고쳐지었으나 그만...

임진왜란은 큰 전쟁이었소. 촉석문 서쪽의 내성을 남기고 외성의 일부가 허물어지고 수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었소. 1593년 재침한 왜군에 성을 내주고 말았었소. 선조 36년, 1603년 경상우도병영이 진주로 이전하면서 성은 다시 일어나고 병영성으로 면모를 갖추었소. 1605년 내성과 외성을 나눠 공북문을 내북문으로 하고, 촉석문을 내동문으로 하였소. 외성에는 서문, 구북문, 신북문 남문이 있었소. 남문 터를 찾아낸다면 내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오. 지금의 진주교 즈음에 남문이 있었을 터인데. 정조대왕 12년인 1788년에 다시 한번 고쳐짓기도 했소. 방비의 어려움을 들어 성의 규모가 축소되기도 했소.

일제강점기 일본은 남아 있던 외성을 뜯어 성 북쪽의 큰 연못 대사지를 메워버렸소. 성도, 대사지도 그렇게 사라져갔소. 해방이 되자마자 겪은 민족전쟁에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히던 촉석루가 하루아침에 타버리기도 했소. 

1960년대 진주성을 복원하면서 민가는 모두 성밖으로 내몰렸소. 텅빈 성이 본디의 큰 외성을 잃어버린 채 자그마하게나마 진주의 이름을 달고 살아남았소. 

2000년대가 들어서자 새바람이 불었소. 임진왜란의 대첩을 기념하고자 큰 광장을 짓는다고 하오. 고을의 수장이 여러명 지나가면서 차곡차곡 사업이 진행되었소. 촉석문 앞 상가들이 하나둘 물러가고 어엿한 설계공모도 거쳐 밑그림도 그려놓았소. 진주대첩기념광장이라고 하오. 
촉석문 앞에 남강을 바라보고 너른 공터가 생겨났소. 철거한다 못한다 다툼도 있었지만 형평탑 마저 짐을 쌌소. 광장 아래는 주차장을 만든다고 하였소. 
그 발아래 내 외성이 있소. 오래도록 묻혀 있었소. 2016년 문화재 시굴조사가 시작됐소. 그해 11월, 긴 세월 묻혀 있던 외성의 기단석이 드러났소. 이듬해 2017년 4월부터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열렸소. 그로부터 5개월 후, 100여년 묻혀있던 외성이 마침내 세상 밖으로 돌아왔소. 긴 세월 잠들어 있던 경상우도병영성이 제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겠소. 내가 원래 이리 작지 않았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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