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플러스 <204> 통영 천암산
명산 플러스 <204> 통영 천암산
  • 최창민
  • 승인 2018.09.19 08: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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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수(鄕愁)를 자극하는 아름다운 통영항. 공주섬 너머 윤이상 선생이 잠든 국제음악당이 정면에 보인다.


이국 땅 독일에 살면서 고향을 그리워했던 윤이상(1917~1995)선생은 타계한지 23년만인 지난 2월 통영으로 돌아왔다. 생전 그는 “통영의 한적한 바닷가에 낚시를 드리우고 해조음을 들으면 어떤 악기도 필요 없다” 고 했다. 평생 음악인으로 산 그가 본능적으로 고향의 소리, 자연의 소리에 끌렸다 할 것이다. 토지 등 숙명처럼 글쓰기에 몰입했던 박경리(1926∼2008) 선생이 말년에 찾았던 곳 역시 통영의 한 농원이다.


통영 천암산(257m)은 미륵산의 유명세에 덜하지만 지리학상 주산으로 꼽는다. 채 300m가 안 되는 마루금을 걸을 때 눈앞에 언뜻 보인 것은 통영 내륙 깊이 들어온 항구와 알록달록한 작은 집들이었다. 고층 아파트가 장마철 죽순 크듯 하는 빌딩 숲 사이로 정감 있는 항구와 동피랑이 살짝 보인 것이다. 그 옆 남망산 조각공원 기슭에 통영시민문화회관이, 바다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오갔으며 바다 건너에는 윤이상 선생이 잠든 통영국제음악당이 보였다. 이름 하여 조선의 최고 미항, 동양의 나폴리 통영항이다.

이때 학창시절 배웠던 노래가 입가에 새어나왔다.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오곡백과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달새 높이 떠 지저귀는 곳(중략)나 어릴 때 놀던 내 고향보다 더 정다운 곳 세상에 없도다’ 늙은 흑인의 고향 버지니아를 그리워하는 심정을 담아 미국의 음유 시인 블랜드(James A Bland)가 1911년 작곡한 것이다.

고사 성어 수구초심(首丘初心)은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을 향해 돌린다는 뜻, 생의 끝자락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본능적으로 발동한다는 의미리라.

고향, 말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한때 그곳에서 꿈과 희망을 키웠고 젊은 날 또 한때 낙망하고 좌절했을 적에도 포근히 품어주었던 곳, 또 우리에게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는,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믿음을 주는 힐링처다.

추석을 앞두고 남해 예향, 빼어난 풍광, 만인의 고향, 통영이 생각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통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천암산∼북포루 둘레길을 소개한다.

 

▲ 편백나무 숲길
 


▲등산로:통영 인평 해성아파트 앞→인평반점 골목길→다올빌 뒤 숲길→산소→첫 갈림길(왼쪽)→두번째 갈림길(왼쪽)→능선→암릉→나무계단이 있는 암릉→천암산→돌탑→산불감시초소→명정고개→헬기장→장골산→북파루(여황산)→천주교 북신동성당.

▲인평 해성아파트 입구 오른쪽 공터에 주차 공간이 있다. 다시 큰 도로로 나와 올라가면 오른쪽 ‘인평반점’ 간판이 붙은 주택이 보인다. 그 골목길을 따라 다올빌 앞으로 휘돌면 좌측에 숲길이 열려 있다.

이른 아침부터 내린 비에 후줄근히 젖어버린 청록의 나뭇잎이 더욱 원시적인 싱그러움을 발산한다. 벌초가 된 산소를 지나고 첫 갈림길 왼쪽으로, 잠시 뒤 나타나는 두번째 갈림길에서도 왼쪽을 따라야 능선에 올라설 수 있다.

출발 후 30분, 나무계단이 설치돼 있는 암릉을 만난다. 작은 산에도 오솔길과 어울리는 암릉이 있다는 게 트레킹의 묘미를 배가시킨다.

다만 요즘 비 예보는 너무 잘 맞아 탈이다. 이런 날은 예보가 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소나기가 세찼다. 잦아드는가 싶다가도 센바람이 불어 닥친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날씨는 당혹케 한다. 낡은 방수등산화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양말을 순식간에 적셨고 레인코트는 깃발처럼 펄럭였다. 배낭 커버에다 카메라 간수까지…, 우중산행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결정적으로 싫은 것은 안개와 구름이 앗아간 조망권이다. 먼 조망은 구름이 앗아가고 가까운 풍경은 안개가 훔쳐갔다. 가끔 건듯 바람이 불어 손톱만큼만 풍경을 보여준다.

한 시간이 못돼서 천암산에 닿는다. 너무 낮아서일까 이정표를 새긴 나무말뚝이 정상석을 대신한다. 바다 가까운 능선엔 강한 바람이 불어와 몸을 휘청거리게 했다. 발아래 통영의 아름다운 항구와 배, 마을들이 구름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것은 다행이었다. 케이블카와 루지로 요즘 최상의 관광지로 뜨고 있는 미륵산이 보였다. 큰 섬을 있는 통영대교도 보였다. 그러다가도 경치가 사라지면 미련 없이 걷는다. 싱그러운 숲길을 만끽하는 것이 더 효용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박경리·윤이상선생은 통영이 아닌 외지로 나가서야 비로소 이름을 떨친 케이스다. 이유가 있다한다. 풍수학상으로 보면 천암산이 주산인데 높이가 낮아 객산인 미륵산에게 주산 지위를 내줬고, 그래서 통영인이 성공하려면 외지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호사가들의 말일 테지만 반대로 외지에서 통영으로 들어와 명성을 떨친 경우라며 이중섭화가와 백석시인을 든다.

 

▲ 명정고개 석장승



봉우리인지 능선인지 모를 산줄기에는 산불감시초소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 인공 조림한 편백나무 숲과 그 사이로 트레킹길이 이어진다.

출발 1시간 30여분 만에 명정고개에 닿는다. 고개를 중심으로 양쪽에 쉴수 있는 평상이나 체육시설이 많이 설치돼 있다. 시의 등산로 관리가 꽤 세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래된 것이라면 모두 철거하고 보는 세태인데 이 지역에는 칠하고 보수해서 사용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명정고개에는 제주도의 하루방과는 비슷하게 생긴 석장승이 한쌍 있다. 옛날 통영사람들이 원문 아래 해안에서 나룻배로 북신만을 건너 명정동 고갯길을 통해 이 고장 옛 두룡포로 오갔다. 그러다가 1604년(선조 37)통제영을 설치한 후에야 원문 안에 길을 내 나루를 건너는 폐단을 없앴다. 이 돌장승은 육로 개설 이전 유적이다. 원래 큰 돌탑과 함께 한쌍의 장승이 세워져 있었으나 1970년께 도로를 확장하면서 돌탑과 장승 1기가 매몰됐다. 1993년 장승 1기를 발굴했으나 머리부분이 손상돼 같은 모양으로 제작해 세운 것이다.

지도상에 표기가 안된 장골산을 지나면서 하산길 로 접어든다,

2시간 10분 만에 북포루(北鋪樓)에 선다. 본래 여황산인데 망루를 세웠다. 3세기동안 조선 수군을 지휘했던 삼도수군통제영의 뒤에 위치한다. 동피랑 동포루, 서피랑 서포루와 방향만 다른 한 세트이다 그 아래에 충무공 이순신장군을 모신 충렬사가 있다. 그 옆 세병관(洗兵館)은 국보 305호. 이름은 두보의 시 세병마행에서 왔다. 천하장사를 시켜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다 갑옷과 병기를 깨끗이 씻어 못쓰게 하리라는 의지, 즉 종전을 의미한다.

 

▲ 북포루



북포루에서 명정동이 보인다. 박경리 선생이 살았던 곳, 유년의 박경리 선생은 외로웠다. 외출이 잦았던 아버지는 급기야 집을 나가 버렸다. 고독과 외로움, 증오 연민, 만감이 교차했으리라.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극단의 감정과 고독을 운명처럼 안고 살았다. 엎친 데 덮친 격, 자신 역시 슬하에 아들과 딸을 뒀으나 전쟁 때 남편과 아들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

때 마침 날씨가 개었다. 대양으로 열린 통영의 아름다움이 보였다. 가까운 바다에 공주섬이 몽실하게 떠 있고 그 건너 윤이상 선생이 묻힌 국제음악당이 보였다.

또 다른 통영인 청마는 시 ‘깃발’을 통해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鄕愁)를 표현했다. 저 푸른 해원을 향하야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표시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고향이란 말이 어울리는 항구의 산에 서서 대양과 하늘의 끝을 무연히 바라본다. 눈이 시리더니 차가운 침이 목구녕으로 넘어갔다. 저미고 벅찬 가슴이란 이럴 때 쓰는 표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서 내려가는 길은 달콤했다. 길은 북신동 천주교성당 앞으로 연결됐다. 4시간이 안 걸렸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 강풍이 부는 산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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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산 2018-09-27 12:07:07
최기자님 멋진 곳을 다녀 오셨군요.
언제 틈내서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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