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시각]차례상의 종말
[기자의시각]차례상의 종말
  • 경남일보
  • 승인 2018.09.2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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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기자(미디어팀)
김지원기자
“홍동백서, 어동육서, 조율이시, 좌포우혜” 라고 그럴싸한 법칙인양 내세우던 것이 근거없는 일이란다. 차례상의 근거로 생각하는 율곡 선생의 ‘격몽요결’에서도 적용되지 않는 규칙이라고 한다. 마루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상에 온갖 것을 차려내는 풍습은 1960년대 이후에 생겨났다고 한다. 이것저것을 제자리에 구색 맞춰 놓으려고 하면 차례상 차리는 비용은 명절마다 큰 일이었다.

때문에 해마다 명절 즈음이면 빼먹지 않고 나오는 기사가 있다. 이번 차례상은 전통시장에 가면 얼마가 들고 대형마트에 가면 얼마가 든다는 내용이다. 상차림에 드는 비용은 생선, 육류, 육포, 식혜, 대추, 밤, 배, 감, 등등 일일이 차려낼 수 있는 제수용품을 구매하는데 드는 값이다.(음식을 만들고 차리는 노고에 대한 비용은 전혀 없다) 전통시장 제수용품이 저렴하니 지갑사정도 생각하고 시장상인들도 생각하면 꼭 짚어줘야 할 것만 같은 소식이다. 덕분에 시장과 마트를 분주하게 드나들며 온갖 제수용품을 구비해, 먼지낀 제기를 반질반질 닦아다가 추석 차례상을 또 한번 무사히 넘겼다.

명절이 지나자마자 SNS에는 “여자들만 일하라고 하는 사람들 제사는 앞으로 모시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조손간에 대판 싸움이 났다는 사연이 주작(지어낸 이야기)이다 아니다며 논쟁이 뜨거웠다. 딸들이 말하는 건 안듣고 같은 이야기를 아들이 전해주니 그 말은 듣더라며 울분을 토해내는 사연이다. 차례상을 차리다 벌어지는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음식을 만들고 차리는 노고에 대한 비용이 없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보자)

몇해 전부터는 간소화된 차례상이 명절마다 화제가 되고 있다. 과일 몇가지나, 요즘 먹거리들로 찻상을 차려내기도 한다. 소박한 차례상 사진들이 SNS의 ‘좋아요’ 파도를 타기도 했다.

애초에 차례상에 놓인 음식과 술은 저마다 의미들이 첩첩이었다. 집집마다 차례에 참가하는 구성원들을 통해 전해내려왔어야 할 의미지만 삶의 형태와 맞지 않는 일이 된지 오래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의미는 전달되지 않고 규칙만 남은 것이 홍동백서니 조율이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차례상의 의미를 전해주는 일이 쓸모 있는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든다. 의미를 잃어버리고 비용으로만 불려지고 있는 차례상은 더디게 종말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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