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사람 구경이 으뜸
축제는 사람 구경이 으뜸
  • 경남일보
  • 승인 2018.09.3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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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경남도보 편집실장)
정재모

촉석루가 그림자를 드리운 남강에 축제의 등(燈)이 하나둘 뜨던 날. 선학산에서 굽어보던 한 시민이 중얼거렸다. “유등 재미없어!” 일행 하나가 받는다. “예술젠들 안 그래서? 천날만날 유싱개 양판맹키로…” 그들은 올 축제엔 안 나갈 거라 했다. 유등축제건 개천예술제건 해마다 되풀이되는 내용이 식상하다는 투였다. 진주에 살면서 흔히 듣는 소리다.

개천예술제 때면 으레 떠오르는 두 개의 개인적 회억(回憶)이 있다. 명칭과 이미지에 관해서다.

어른들은 개천예술제를 그냥 ‘예술제’라 했다. ‘개천’을 빼고도 의사소통이 충분했던 거다. 타지방에는 이만한 축제가 없었던 탓일 게다. ‘영남예술제’로 출범한 개천예술제가 최초의 전국 규모 지방축제란 건 교과서적인 역사다. 영남예술제란 초기 명칭이 우리 동네 노인들 입에 여태 살아있는 것도 아마 초창기의 그런 긍지 때문이리라.

‘예술제’는 내게 늘 만추의 이미지로 온다. 인도를 뒤덮은 샛노란 은행잎, 성지 안의 쌀쌀한 기온, 베레모와 바바리코트로 멋을 부린 지역 예술인들…. 서둘러 추수를 마무리하던 향리의 들녘도 그립다. 비닐하우스 없는 벌판의 늦가을 풍경은 황량했지만 지금 돌이키니 사뭇 정겹다. ‘타작 끝내고 보리 두둑도 다 덮어야 아버지 따라 예술제 가는데…’ 어린 마음에도 일이 더뎌 안타깝던 시절이 내겐 있었다.

미어터지는 시골버스를 타고 ‘읍내’에 나간들 어린이가 향유할 예술이 무엇이었겠는가. 거리를 빽빽이 메운 인파 외에 더 무엇을 보았을까. 아아, 있었다! 길가 곳곳에 벌어진 야바위판, 품바 엿장수, 강변 천막 공간의 서커스, 그리고 아버지 일행들에 끼여서 먹던 국밥이 어린 내게는 예술제의 전부였다. 그래도 필생 못 잊는 예술제로 가슴에 박여있는 거다. 음력 개천절에 맞췄던 찬 기운 속 그 예술제가 문득 그립다.

만추는 아니지만 시월 첫날 오늘부터 남강에 유등이 흐른다. 모레는 개천예술도 개막한다. 볼 것이 왜 없으랴. 별것 없다는 축제 거리는 인파로 뒤덮일 거다. 위생에 꺼림하면서도 강턱의 임시 음식집은 북적댈 것이고 ‘개천장’ 천막 뜨내기 잡화점엔 진기한 물건도 많겠지.

밤거리 인파가 제일 볼만할 거다. 축제는 결국 자신도 구경거리의 일부가 되어 사람 구경하는 일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오늘밤 등불 뜬 남강의 해시(亥時)엔 하현달이 돋는다. 그 은빛 조각달이 잠긴 강가 군중의 일원이 한번 될까 한다. 되어서 볼일 없이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련다.

 

정재모(경남도보 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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