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한 여성이 극펨에게 하는 충고
[경일시론] 한 여성이 극펨에게 하는 충고
  • 경남일보
  • 승인 2018.09.3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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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숙(인제대학교 교수·객원논설위원)
 
김향숙교수



“...여성에게 남은 것이라곤 정부를 타도하고, 화폐체계를 청산하고, 완전한 자동화를 도입하고, 남성성을 제거하는 방법 밖에 없다.” 급진 여성주의자 발레리 솔라나스의 ‘SCUM 선언서’ 첫머리말이다. 이 글이 쓰여진 60년대는 ‘전쟁 대신 사랑을 하자’며 반전, 평화를 외치는 카운터컬처운동이 확산되는 분위기 속에 여성평등을 찾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던 시대였고, 남성혐오, 남성사회권력타도, 여성우월을 외치던 급진 여성주의(radical feminism)가 극에 달했다. 하지만 가부장적 패러다임의 철벽에 바위치기, 기득권의 웃음거리였던 “이들(급진 여성주의자)”의 노력은 곧 희석되었고, 여성주의 운동은 음소거된 채 ‘억압된 인구에 의한 억압된 운동’으로 퇴화했다.

여성주의 운동이 #미투 운동에 힘입어 다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당연히 주목 받아야할 이슈가 이제야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토론이 잦아지고 국가정책들이 하나 둘 거론되는 긍정적 파장 가운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부작용도 생겼다. 바로 “이들”의 부활이다. 성과 젠더를 불문하고 전세계 사회 구석구석에서 높은 지위와 인지도를 가진 인물들이 여성주의를 인권운동으로 인식하고 참여하는 사이를 틈타 “이들”의 비상식적 남성혐오와 사회관념이 뜨거운 여름 날 먹다 버린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박테리아처럼 번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짙게 나타나는 것도 눈에 띈다. 물론, 반사회적 행위는 사회에 일부 책임이 있다는 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사회를 지배하는 계층, 문화와 이념에 계속 무시당하고 소외받던 자들의 패배감과, 이로 인해 비뚤어진 사회상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여성성 상품화나 여성능력비하 등이 선진국에 비해 극히 뒤쳐지는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느끼는 분노와 “이들”의 만행이 무관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이들”의 반사회적 탈선 역시 사회가 나빠서 그렇다고 넘어가야할 문제인가?

한 급진 여성주의자는 ‘여성폭력이 당연하다는 듯 매일 일어나는데 사회제도와 권력계층은 이를 바꾸긴 커녕 여성에게 폭력적인 문화를 장려했다. 이러한 제도를 뿌리 뽑지 않으면 여성차별과 폭력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은 어떤 식으로 이 차별적 가부장사회를 바꾸려하는가? ‘나쁜 건 다 남자탓’ 즉, 성공하면 내 능력이고 실패하면 다 남자 때문이라 비난한다. 본인의 욕구불만, 무능력, 열등감과 질투, 증오를 사회에 투사하는 반사회적 접근방식으로 국민 모두를 적으로 돌린다. “이들”이 하는 행동은 가부장적 제도가 여성에게 행하는 차별보다 더하다. 여성이 인권적 차별 대상이라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스스로 발전하지 않고 실패를 무조건 남성과 남성주의 사회 탓으로 돌린다고 해결 되는 건 없다. 입법기관에 비합리적으로 생떼를 쓰며 무용지물에 양극화만 초래하는 역차별적 정책과 법을 만들라고 정치계를 협박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문제를 인식했다면 체계적으로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합리적, 단계적, 평화적, 합법적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이성적인 토론을 하고, 말다툼도 하고, 시위도 하면서 서로의 오해와 차이점을 해결해나가면서, 협력을 이끌어 내야한다. 양성평등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사회문화 인식을 개혁하고, 법률 제정, 국가 정책 도입을 통한 체계 개선에 나서야한다. “이들”의 존재는 여성에 대한 모욕이며, “이들”의 행동은 스스로를 조롱감으로 만들 뿐이다. “이들”의 행동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의 본질과 페미니스트들의 진정한 의도와 노력에 먹칠을 한다. 아쉬운 건 이렇게 아무리 말해도 “이들”은 들으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향숙(인제대학교 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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