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플러스 <205> 흑석산
명산 플러스 <205> 흑석산
  • 최창민
  • 승인 2018.10.0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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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석산 정상에서 가학산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

비온 뒤 바위가 흑빛을 띤다고 해서 흑석산(黑石山·650m)이 됐다. 땅의 바깥쪽 즉 가장자리를 의미하는 갓산에서 검산으로 바뀌어 흑석산이 됐다는 설도 있다. 이 산을 기준해 동쪽으로 진행하면 가학산(加鶴山·577m), 별매산으로 연결된다. 산세가 날아가는 학처럼 생겼다는데서 가학산, 엎치고 덮친 바위의 모양새가 밤 하늘 별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별매산이다.

무엇보다도 이 산군들은 국립공원 영암 월출산 옆에 있는 산이라고 하면 가장 이해가 빠를 것같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월출산의 명성에 가려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얼마 전부터 산 꾼들의 입소문에 의해 남도의 암릉 산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은굴과 은샘, 바람재를 비롯, 갖가지 형상의 바위와 벼랑, 거친 암릉이 등산로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의미를 새겨 보면서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능선중간에 있는 바람재의 바람은 남해풍이 산마루를 타고 넘으면서 형성되기 때문에 몸이 떠밀릴 정도로 강하다. 특히 겨울에는 추위와 이 바람이 합쳐져 혹독하기 그지없다.

남동으로 길게 뻗은 산줄기는 마치 설악산의 공룡능선, 용아장성 일부를 옮겨 놓은 듯 웅장하다. 날카롭거나 뭉툭하면서 힘차게 솟은 암봉과 낮은 곳 바위틈에 자라는 관목들이 조화를 이뤄 빼어난 경관을 보여준다.

바람의 고향, 에메랄드빛의 도암만, 그 위에 올숭달숭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이 조망권에 들어있다. 반대편엔 월출산 월각산 등 품격 있는 명산이 위치하고 이를 중심으로 높고 낮은 산릉이 겹쳐 산그리메를 만든다. 이름 하여 남도의 숨은 진주, 흑석산이다. 전남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와 해남군 계곡면 가학리 경계에 위치한다.

해남흑석산

해남, 영암지역에는 유난히 ‘월’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다. 월출산의 ‘월’을 정점으로 월각산, 월하리, 월매, 월산제, 월평제, 송월리, 상월리, 용월, 대월리, 대월 등이 있다. 대월이 문제였다. 당초 월각산 산행을 위해 내비게이션에 ‘대월리’를 입력한 뒤 출발했지만 중간에 에러가 생겨 무심코 대월마을을 재입력하고 찾아간 곳은 엉뚱하게도 또 다른 대월이었다. 대월리와 대월마을이 다른 걸 몰랐던 게 화근이었다. 거기다가 우여곡절 끝에 대월리를 찾았을 때 월출산국립공원 측으로부터 월각산 산행을 할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대안으로 찾은 곳이 흑석산이었다. 철저하지 못한 준비,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였다.

흑석산의 들머리는 가학산자연휴양림이다. 흑석산이 70m나 더 높은 산이지만 역동적인 산세 때문인지 휴양림 앞에 가학산을 붙였다.

휴양림을 에두르는 산책길을 따라 돌아가면 큰 바위에 ‘흑석산’이라고 새긴 표시석이 보인다. 곧 물길을 넘어 돌아가면 산으로 들어가는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10여분 정도 오르면 휴식할 수 있는 평상이고 이곳에서 정면에 우뚝하게 보이는 것이 흑석산이다.

바람에 실려 오는 풀냄새가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갑자기 높아지는 고도에 맞춰 몇 차례의 휴식과 몇차례의 가쁜 숨을 몰아쉬면 어느새 기이한 모양의 은굴에 닿는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부터 은을 채굴하기 위해 강제노역을 시킨 곳이라고 한다. 한사람도 들어가기 힘든 좁은 입구인데 어떻게 은을 채굴했다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을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2층 구조로 돼 있고 100여m지점 끝 벽에 은가루가 반짝인다고 한다. 이곳에는 작은 옹달샘이 있는데 이곳에 빠지면 마산면 맹진리 다리 밑에서 찾아야하고 또한 그곳에서 귀를 기울이면 영암군 두억리 닭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말이 마을사람들에 의해 구전되고 있다. 1940년대 폐쇄됐다.

 
일제 강점기에 은을 캐낸 굴

경사진 은샘을 지나 비스듬한 언덕을 돌아가면 이 산의 주능선 바람재에 닿는다. 바다를 본다. 칼바람 몰아치는 곳에서 선계의 아름다움을 본다. 돌아서서 월각산과 월출산을 본다. 허연 멀근 안개 속에 거대한 산줄기가 월출산이다. 왼쪽으로는 봉화대터를 지나 가리재→두억봉으로 이어지는 길, 오른쪽 방향이 흑석산이다. 두억봉에서 흑석산 가학산 별매산까지가 종주능선이다. 이 바람재는 바다와 산을 구분 짓는 정점이다

두세개의 봉우리가 이어지다가 1시간 30여분만에 정상에 닿는다. 표지석에 흑석산이 아닌 깃대봉이라고 새겨져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가학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처음으로 흑석산으로 표기됐다고 한다.

이 산은 월출산 국립공원에 속한 주지봉에서 남동쪽으로 돌아 월각산 별매산 가학산 등성이가 남서쪽으로 1㎞쯤 오다가 솟은 산이다. 북쪽은 영암군 학산면 학산천, 남쪽은 해남군 계곡면 방춘리로 가학천이 영암호로 들어간다. 남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고 내륙으로는 월출산이 에워싸고 있다.

지나온 온 것과는 달리 가학산, 별매산의 산세는 역동적이다. 왼쪽 사면은 육산으로 비교적 완만하고 해안 쪽은 깎아지른 천길 벼랑이다. 오랜 과거에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큰 지각 변동이 있었음을 알게 한다.

 
gn20180928 영암흑석산 (40)

압권은 진안 마이산의 형태를 닮은 가학산, 봉우리가 피라미드, 혹은 여인의 가슴을 닮았다. 그 오른쪽 한줄기 앙칼진 암릉이 호랑이의 꼬리처럼 생겨서 호미동산이다. 설악산 용아장성 못지않은 조형성을 보여준다. 힘이 넘치고 선이 굵다.

5월 초에는 가학산에서 가래재로 이어지는 능선이 철쭉으로 천상화원을 이룬다. 1995년부터 계곡면 청년회에서 이지역을 알리기 위한 철쭉 대제전을 매년 5월 둘째 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실시한다.

정상을 떠나 가학산 방향으로 가다가 작은 봉우리에서 갈림길을 만난다. 가학산으로 가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른쪽 하산 길을 재촉한다.

10여분쯤 내려왔을 때 거대한 암벽과 맞닥뜨린다. 20m높이의 직벽이라 긴장감이 돈다. 길이 없을 것 같은 아찔한 벼랑인데 다가가면 히말라야의 차마고도 같은 통로가 나 있다. 로프에 의지해서 내려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경사와 규모가 크다.

뚝 떨어지는 벼랑길 밑으로 커다란 바위가 입을 벌리고 서있고, 가학산 방향 경사진 산허리에 갖가지 형태를 갖춘 애추에 매력적인 소나무가 붙어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이 이어진다. 이 갈림길은 가학산 자연휴양림으로 합류한다.

12년 전 흑석산 가학산 일대에 한반도에 없는 원숭이가 발견됐다. 우리를 탈출한 일본산 원숭이였는데 등산인들을 공격하거나 음식을 얻어먹으면서 야생화 하는 바람에 당국에서는 골머리를 앓았다. 2006년 포획된 원숭이는 고양시 테마동물원으로 옮겨져 동종의 일본원숭이 찌루와 일구와 함께 순치교육을 받은 뒤 지난 2007년 1월 15일 가학산 우리로 돌아왔다. 현재 ‘해남이’라는 이름 밑으로 6마리가 가족을 이뤄 가학산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휴식포함 5시간이 소요됐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벼랑에는 로프에 의지해 내려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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