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산천재 우보도
[경일칼럼]산천재 우보도
  • 경남일보
  • 승인 2018.10.04 14: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명영 (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담장 아래 쏜살처럼 흘러가는 덕천강, 위쪽으로 지리산 천왕봉, 시선을 당기니 마당 가운데 매화 한그루, 그 옆에 3칸 기와집이다.

처마 밑에 그린 듯 편액이 있다. 위쪽이 트인 그릇 속에 人를 담아 山, 다리를 모으고 두 팔을 늘어뜨려 天, 나머지는 齋로 드물게 보는 전서체, 한 걸음 마루로 다가가 고개를 들어보니 해서체로 ‘山天齋’를 새긴 현판이 있다. 남명 조식 선생이 61세부터 숨을 거둘 때까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던 집이구나.

山天齋 현판 위에 벽화가 있다. 사방이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산속, 굽어진 소나무 아래, 두 노인은 바둑을 두고, 한 노인은 지팡이를 어깨에 걸치고 앉아 바둑판에 무심한 듯 바둑판 너머 허공을 보고, 나머지 노인은 소나무에 기대 오수에 빠진 듯하다.

오른쪽 그림, 노인은 방금 세수를 하였는지 웃통은 벗어 나뭇가지에 걸쳐놓고 발을 물속에 담그고 앉아, 누런 소를 타고 오는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이다. 해설사가 다가오더니 “벽화에 관심이 많군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한다.

바둑을 두는 그림은 ‘상산사호도’로 진시황의 가혹한 정치를 피해 상산으로 들어가 은둔한 네 현인을 그린 것으로, 이들은 수염과 눈썹이 세어 희다는 뜻의 호(皓)자를 써서 ‘四皓’라 불린다. 한고조는 여후(呂后)에게서 난 영을 태자로 세운 상태였는데, 후궁 척부인에서 난 여의를 태자로 바꾸려 하자, 여후는 장량의 말대로 상산의 네 노인을 극진한 예로써 초빙한다. 사호는 태자의 후원자가 되자 한고조는 태자를 바꾸려는 마음을 접었다.

오른쪽 그림, 요순시대 허유는 바르지 않은 자리에는 앉지도, 부정한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의를 지키며 살았다. 요임금이 천하를 그에게 물려주고자 찾아갔다.

“저 같은 자가 그 자리에 어찌 오를 수가 있겠습니까!”

말없이 기산 밑을 흐르는 영수 근처로 가버렸다. 다시 요임금이 구주라도 맡아 달라고 하자, 허유는 이를 거절하고 자기의 귀를 흐르는 영수 물에 씻는다. 이때 소부가 송아지를 타고 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 사연을 들고는 영수를 거슬러 올라가더니 어린 소에게 물을 먹이며,

“그대 귀를 씻은 구정물을 송아지에게 먹일 수 없어 이렇게 위로 올라와 먹이는 것이오!”

두 벽화는 남명 조식 선생의 이미지에 알맞다. 남명 선생과 소에 대한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것으로 여분 벽에 소를 몰고 가는 제자를 바라보고 있는 우보도(牛步圖)을 그려 넣으면 한층 사실감이 있지 않을까!정탁이 진주향교 교수를 이임하게 되어 인사차 남명을 방문하였다. 인사를 마치고 떠나는 그에게 남명은“우리 집 뒤뜰에 소 한마리가 있으니 끌고 가게”라고 하였다. 정탁은 어리둥절해졌다. 남명 선생에게는 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있다고 해도 받아야 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남명이 말하기를 “그대는 말과 의기가 지나치게 빠르니 느리고 둔한 것이 오히려 멀리 갈 수 있는 것만 못하다네!”라고 하였다. 정탁은 이 말에서 깊은 가르침을 얻었다(남명학파와 퇴계학파 사이의 정탁, 김경수).

정탁은 예조·병조·형조 판서 등을 거쳐 이조판서 세 번, 대사헌 여덟 번, 임진왜란을 당하여 임금을 호송한 공으로 호성공신에 오르고, 이순신이 파직되고 압송되자 구명하여 백의종군에 이르게 하였다. 좌의정에 임명, 나이 들어서 벼슬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물러나 80세 사망, 영의정에 추증. 정탁은 남명 선생의 가르침대로 평생 소 한마리를 마음속에 두고 뚜벅뚜벅 걸어간 것이다.
 
안명영 (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