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밑에 있는 사람
내 밑에 있는 사람
  • 경남일보
  • 승인 2018.10.1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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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명상지도사)
강신

얼마 전 길에서 우연찮게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만난 지 제법 시간이 지났기에 반가움은 배가 되었다. 안부를 물으며 행색을 살피니 사업이 제법 잘 되는지 목에 힘도 좀 들어가 있고 얼굴도 반지르르 기름기가 흘렀다. 말끔한 옷차림으로 옆에서 멋쩍게 서 있는 동행인을 보며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내 밑에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한다. 좀 전의 반가운 마음이 확 사라지고 “야, 너는 얼마나 높이 있는 사람이냐?”고 쏘아붙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우리는 살면서 상대방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히는 언어폭력을 예사로 행사하고 있다. 개구리 올챙잇적 모르고 날뛴다고 초보시절은 싹둑 베어 먹고 ‘내가 데리고 있던 사람’이라느니 ‘군대서 내 졸개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스스로의 인격을 깎아먹는 말이라는 것을 어째서 모르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인간의 신체부위 중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곳이 세 치 혀라고 한다. 그래서 조물주는 혀를 제어하기 위해 두 가지 방어 장치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나는 치아로서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나쁜 말이 나오려고 하면 이빨로 혀를 꽉 깨물어야한다. 그래도 혀가 이빨을 제치고 튀어나오려고 하면 입술을 다물어야한다는 것이다. 과학적인 근거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을 경책하는 기발하고 멋진 비유이다.

탈무드에도 좋은 가르침의 글이 있다. 남편이 아내에게 시장에 가서 가장 좋은 것을 사오라고 했더니 혀를 사왔다. 다음날 시장에 가서 가장 나쁜 것을 사오라고 했더니 이번에도 혀를 사왔다. 의아해 하는 남편에게 ‘혀는 잘 사용하면 더 이상 좋은 것이 없고, 잘못 사용하면 그보다 더 나쁜 것이 없다’고 말했다. 혀를 깨물고 입술을 다물고만 살 수 없다면 상처를 내는 날카로운 말들을 둥글둥글하고 달콤한 말로 바꿔야겠다.

‘내 밑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 ‘내가 데리고 있던 사람’을 ‘나와 같이 근무했던 사람’으로 바꾸어 말한다면 듣는 사람도 기분 좋고 말하는 사람의 인격도 올라갈 것이다.

언젠가 나이가 많은 유명 방송인에게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젊은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비법이 있는지 질문하자 ‘묻기 전에는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짧은 한 마디지만 여운이 오래가는 답변이다. 좋은 말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으면 성자도 될 수 있다고 했던 법정스님의 말씀이 갑자기 생각나는 아침이다.

 

강신(명상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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