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성으로 보는 진주성 ‘어제와 오늘’
외성으로 보는 진주성 ‘어제와 오늘’
  • 김귀현
  • 승인 2018.10.1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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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진주성 외성의 기단석이 진주대첩광장 조성 예정부지 시굴조사에서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모은 가운데, 100년 간 묻혀있던 진주성 외성 일부가 시민과 마주하게 됐다. 지난해 11월 기단석 발견으로 외성 존재 가능성이 제기된 뒤 지난 4월부터 진행된 본격적인 발굴조사에서 그 형태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발굴된 외성은 조선 후기 복원된 성벽 일부가 보존된 상태로, 임진왜란 당시 허물어졌다가 이후 다시 쌓은 것이 이번에 발견됐다.

◇‘천혜의 요새’ 원형 드러낼까

1963년 1월 21일 사적 118호로 지정된 진주성은 임진왜란 당시 민관군이 함께 왜병을 물리친 진주대첩의 역사 그 자체로 남아있다. 진주 출신으로 좌의정을 지낸 하륜이 지은 진주성 성문기에 의하면 고려시대 말까지 흙으로 쌓았다가 1377년 다시 돌로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380년에 다시 쌓아 완공했다. 조선 초에도 진주성 개축이 있었으며 임진왜란 직전인 1591년(선조 24년) 경상감사 김수가 진주성을 수축하면서 지금의 외성이 축조됐다. 임진왜란 이후 1603년 창원에 있었던 경상우도병영이 진주로 이전하면서 다시 수축되고 병영성의 면모를 갖추면서 ‘여지도서’에서 보이는 진주성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진주성은 1605년 축성 완료 이후 내성과 외성을 나눠 기능을 분리했다. 1605년(선조 38년) 병사 이수일(李守一)이 진(鎭)을 성내로 옮기고 “성이 너무 넓어 수비가 곤란하다”해 내성을 구축했다. 공북문을 내북문으로, 촉석문을 내동문으로 삼았으며 외성에는 서문, 구북문, 신북문, 남문이 있었다.

조선시대까지 서장대 아래 나불천을 북쪽으로 이어 지금의 진주경찰서, 진주교육지원청, 중앙로터리, 동방호텔 일대를 경계로 하는 외성이 있었으며 내성의 둘레는 1.7㎞이고, 외성의 둘레는 4㎞ 가량으로 전해진다. 내년 4월까지 진행되는 발굴조사에서 남문의 흔적이나 원형의 일부를 찾아낸다면 그 규모를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진주외성 발굴현장.연합뉴스

◇단단히 견뎌온 역사, 햇볕을 보다

이번 발굴조사는 진주성 촉석문 동쪽에서 진행 중이며, 조선시대 당시 경상우도병마절도영이 있었던 진주외성 남쪽에 해당하는 곳이다. 현재 남체성 일부가 지난해 7월까지 철거된 건물 아래에서 확인됐다.

지난달 11일에는 발굴 현장이 일반에 공개됐다. 이날 시민 대상 진주성 발굴조사 현장설명회에서는 최대 높이의 성벽까지 공개됐다. 이번 조사로 드러난 진주성 외벽 남벽은 남강을 마주 본 형태다.

외성은 대체로 해발 26m에서 성벽 상부가 드러나고 최하 23m까지 성벽 기단이 노출된 상태다. 확인된 성벽은 길이 약 100m, 너비 6~7m에 최고 높이는 4m 가량이다. 외벽 축조방법은 높이 100㎝ 이상의 장대석으로 지대석을 눕혀놓고 그 위에 20㎝ 안쪽으로 대형 기단석을 세워 쌓은 후 작은 돌로 빈 공간을 메운 형식이다. 이런 축조방법은 밀양읍성, 기장읍성 등과 같다.

한국문물연구원 등 조사단은 외성의 성벽 성격으로 그 축조, 수축 시기를 추정했다. 이들은 기단부와 벽석에 사용된 석재의 형태와 축조기법이 달라 크게 상-하층으로 구분되고 내벽 초층도 초축 시 성토층과 수축 시 내벽다짐층으로 구분돼 3단계에 걸쳐 축조된 것으로 판단했다. 성벽 인근에서는 조선시대 기와, 분청사기·백자, 청자 등 개축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유물도 출토됐다.

한국문물연구원 관계자는 외성 성벽이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로 △성벽 인근의 모래가 자연 범람해 성벽을 덮은 점 △지대에 단차가 있어 성벽이 위치한 강변이 지금 시가지보다 저지대에 위치해 성벽이 허물리지 않고 평지 위로 건물이 지어진 점 △발굴된 성벽의 형태가 견고해 훼손을 피할 수 있었던 점 등을 들었다.

이번에 발굴된 진주성 외성벽 일부는 19세기 ‘진주성도’(晉州城圖) 가운데 3~5폭의 화면 중앙부 석축으로 구분된 내·외성의 경관 흔적, 일제강점기 당시 사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던 진주성 구조를 파악할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진주성도/자료제공=한국문물연구원

◇추가 발굴 가능성 높아…“조사 구역 확대 필요”

한국문물연구원은 외성 성벽 수축에 사용된 내벽다짐층에 대한 노출조사 등을 진행 중에 있다. 흙이 쌓여있는 있는 상부의 흙을 제거하는 작업 이후 성벽 경계별로 추가 조사가 이어진다.

시굴조사 지정 구역 내 현장조사는 올해 말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발굴 조사지역에는 일종의 방어시설(초소)인 ‘치’로 추정되는 기반 흔적(2층 형태)이 노출돼 있다. 이는 축대 등과 함께 진주성 남문 등 진주성 외벽 원형의 위치를 밝힐 수 있는 기준이 돼 관심을 모은다. 사각형 형태의 ‘치’는 현재 끝부분이 드러나 있으며 현재 시굴조사 지정 구역 밖인 외성벽 바깥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정확한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발굴 상황에 따라 외성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최은아 한국문물연구원 조사연구실장은 “외벽이 추가로 발굴될 가능성이 높은 구역이나 현재 ‘치’가 연결된 부분 등은 시굴조사 면적이 확대 돼야 조사할 수 있다”며 “이와 관련해서는 문화재청, 진주시 측 결정이 필요하며, 조사단에서는 확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겠다”고 밝혔다.

이번 외성 발굴에 대해 학계 관계자들은 조선시대 축성 기법을 알 수 있고 외성 복원을 위한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는 점, 외성 구간을 파악할 수 있는 점, 진주대첩 등 역사적 흔적이 남은 유물이 발견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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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대첩광장 어떻게 되나

현재 진주시는 문화재 조사 기간인 내년 4월 이후 문화재청 자문위원의 결정을 청취한 이후 사업 방향을 따른다는 입장이다.

진주시는 오는 2019년까지 진주성 촉석문 앞 2만 5020㎡ 부지에 총 사업비 980억원을 투입해 진주대첩 기념관을 비롯, 지하 주차장 408면 등 기념광장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진주대첩광장 조성은 지난 2001년 당시 백승두 진주시장의 지시로 촉석문 앞 정비사업을 검토하면서 처음 거론됐다. 이어 2002년 정영석 진주시장이 ‘역사문화광장’을 공약사업으로 추진, 2006년부터 현재 진주대첩광장 이름으로 진행돼 다음해 본격적인 광장 조성사업을 시작했다

시는 지난 2015년 지방재정 중앙투자사업 재심사 과정에서 조건부 승인이 나면서 같은해 5월 진주대첩기념광장 주차장 조성계획을 수립했다.

2016년 시는 문화재 2018년 3월 완료를 목표로 시굴조사 용역을 시행, 진주대첩 기념광장 부지 내 문화재 시굴조사 전문기관을 선정하고 7월 보상지역 건물 철거를 완료했다.

진주대첩광장 조성 예정부지 공사에 앞서 문화재 조사가 시작됐고 이 문화재 조사작업 중 외성 터 기단부로 추정되는 유물이 나와 문화재청은 광장 부지 전체에 정밀 발굴조사를 지시했다. 올해 3월 용역업체를 선정, 지난 4월부터는 정밀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시는 이 발굴결과를 토대로 진주성대첩기념광장 지하 주차장 설치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었다.

외성 남측 성벽 원형이 발굴되면서 문화재청의 보존방식 결정에 따라 광장 설계는 변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문화재청이 매장 문화재 현지보존 등의 결정을 내릴 경우 기존 사업 계획은 진행할 수 없다. 부분 보존 결정 등의 지도·권고가 내려올 경우 △노출된 진주성 외벽의 보존 △원형대로 6m 가량으로 복원 등 외성 관련 전문가 의견·여론 수렴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시민공청회 등을 통한 외성 복원 관련 여론 수렴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박용식 역사진주시민모임 운영위원장은 “외성이 발견돼 광장 예정부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최종적으로 문화재청 결정에 따라야 하겠지만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 현재 발굴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청회를 통해 시민 의견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귀현기자 k2@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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