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80>가야산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80>가야산
  • 경남일보
  • 승인 2018.10.1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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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트레킹 계곡, 가야산 백운동

신라말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진성여왕에게 시무 10조를 올렸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을 버리고 전국을 유람한 뒤 가야산으로 들어가 산신이 된 사람이 고운 최치원이다. 힐링여행가이자 대학자인 고운 선생이 찾은 가야산, 구름을 타고 다니는 신선과 봉우리마다 산안개에 가려진 신화가 숨어있을 듯했다. 신선의 세계와 신화의 속살을 만나보고 오늘 하루만이라도 신령스러운 곳에서 신선의 삶을 체험하기 위해 국민체력센터(원장 이준기) 명품 걷기 클럽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가야산 백운동계곡 트레킹을 떠났다.
▲ 만물상능선으로 가는 가파른 길.
경북 성주군 소재 가야산백운동 탐방지원센터에서 트레킹을 시작했다. 탐방센터에서 왼편으로 나 있는 만물상 가는 길 대신 비교적 평탄한 길인 용기골 계곡 탐방로를 선택했다. 지난밤에 비가 내려서 그런지 매미 소리가 사라진 골짜기엔 물소리가 제법 우렁찼다. 가을이 여물어가는 소리로 들렸다. 백운교 1, 2, 3교를 지날 때까지는 물소리의 응원을 받으며 쉽게 걸어갈 수가 있었다. 백운3교에서 백운암지에 이르는 길은 다소 가팔랐지만 그런 대로 걸을만했다. 백운암지는 석축만 일부 남아있었고, 폐허가 된 절터에 나무들이 주인이 되어 장좌불와(長坐不臥) 수행을 하고 있었다. 절터에서 잠깐 쉬면서 다리품을 덜고, 다시 서성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길이 매우 가팔라서 숨이 목까지 차올라 왔다. 평탄한 길만 트레킹을 해온 회원들에겐 무척 힘이 드는 길이었다. 쉬다걷다를 반복해서 마침내 목적지인 서성재에 도착했다. 가야산성의 서문이 있었던 고개라고 해서 이름을 서성재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은 탐방객들의 노천식당으로 바뀌어 있었다. 식당터로는 명당 중의 명당이었다. 양쪽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함께 나누는 점심도시락 맛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식사를 마친 뒤, 일부는 가야산 정상인 칠불봉으로 산행을 하고, 필자와 더불어 나머지 사람들은 만물상능선을 타고 출발점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 절터만 남아있는 백운암지.
▲ 안개에 반쯤 가린 칠불봉.



안개옷을 입은 지상 최고의 만물상

만물상능선을 타기 위해 작은 등성이 하나를 넘자, 기다리던 만물상은 보이질 않고 안개구름이 계곡과 봉우리들을 덮고 있었다. 실망 때문이었을까, 다리가 풀려 휘청거렸다. 낙담하며 한참동안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는 사이 세상에, 안개구름은 감쪽 같이 사라지고 숨어있던 기암괴석들이 형체를 드러냈다. 첫 번째 만난 바위떼, 마치 수레에 짐을 가득 실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안내판을 보니 이곳이 바로 상아덤이었다. 이 상아덤에는 가야산의 신화와 전설이 배어있는 곳이다. 가야산 여신인 정견모주가 가야산에 살고 있는 백성들의 평안을 위해 밤낮없이 기도를 했는데 천신인 이비가지가 정견모주의 고운 마음씨와 아름다운 미모에 반하게 되었고, 이비가지와 정견모주가 이곳 상아덤 꽃가마를 타고 오색구름 속 신방에서 혼인을 하여 두 아들을 얻었는데, 큰아들은 대가야의 이진아시왕이 되었고 둘째아들은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되었다고 한다. 신화속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내려오다 되돌아본 상아덤은 정말 꽃가마를 닮아 있었다. 이곳에서도 마음이 형상을 만든다는 걸 깨달았다.
▲ 정견모주가 탔던 꽃가마인 상아덤.

다시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오자 서너 명의 사진 마니아들이 평평한 바위에 앉아 안개에 덮인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곳이 카메라 촬영 포인트라며 안개가 걷히길 기다린 지 30분이 지났다고 했다. 얼마나 멋진 곳이기에 풍경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나 싶어 필자도 동참을 했다. 10여 분이 흘렀을까, 바람에 안개가 걷히면서 서서히 바위산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온갖 모양의 바위들이 안개를 헤치며 얼굴을 내밀었다. 혹시 다시 안개가 이 비경을 덮을까봐 탄성을 지를 시간도 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만물상 능선이 우리에게 민낯을 허락해준 시간은 5분도 채 안 되었다. 그 풍경을 다시 보기 위해 한참이나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암벽 사이를 내려오다 뒤를 돌아보니 안개에 가려 있던 칠불봉이 반쯤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하얀 도포를 입은 듯한 칠불봉이 바로 신선의 모습 그대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야산 안개구름이 사람과 산, 바위와 나무를 전설 속 신선으로 만들어 비경을 선사해 주었다. 바람의 손길에 의해 훌륭한 예술품의 탄생과 소멸의 모습을 보며 새삼 바람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 이런 절경에서 신화와 전설 하나쯤 탄생하지 않았다면 가야산이 아닐 것 같았다.

긴 능선으로 이루어진 만물상을 지나오면서 코끼리바위, 돌고래바위, 부처바위, 두꺼비바위, 쌍둥이바위 등 갖가지 모양의 바위를 찾아보는 것도 큰 재미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바위틈으로 나 있는 길에는 가을을 맞아서 피어난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언제 봐도 조신한 모습의 구절초와 꽃며느리밥풀, 쑥부쟁이가 후들후들 떨리는 발걸음을 머물게 했다. 높은 산악지대에서 핀 꽃들이라 그런지 꽃빛이 참 맑고 고왔다.
▲ 안개가 걷힌 만물상 모습.

처음엔 평탄했던 백운동 트레킹 길을 지나 점점 가팔라지는 용기골을 따라 서성재까지 힘들게 올라온 탐방객들에게 가야산이 건네준 선물, 바로 안개를 헤친 바람의 조화로 빚어낸 만물상능선과 칠불봉의 비경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간다. 이런 세상을 선계(仙界)라 부르고 싶다. 잠시만이라도 신선이 된 필자,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가야산 역사신화테마관과 식물원

가파른 계단길을 걸어 내려와 가야산야생화식물원에 들렀다. 총 660여 종의 나무와 야생화가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벌개미취와 꽃무릇, 구절초 등이 한창이었다. 실내전시관과 야외전시원의 꽃길을 지나 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으로 갔다. 가야산 여신인 정견모주와 천신인 이비가지에 얽힌 신화를 재현해 놓은 그림과 조형물 앞에 서니, 마치 신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신화 속의 공간과 상상 속의 이야기를 잘 어우러지게 꾸며 놓은 역사신화테마관은 탐방객들을 신화 속으로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힘들게 다리품을 팔았지만 신선처럼 호사를 누린 하루였다.
▲ 가야산야생화식물원 입구.
 
▲ 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

/박종현(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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