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플러스 <206> 지리산 칠선계곡
명산 플러스 <206> 지리산 칠선계곡
  • 최창민
  • 승인 2018.10.18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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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계곡의 가을


칠선계곡(七仙溪谷)은 지리산의 대표적인 계곡이다. 험준한 산세와 수려한 경관, 은밀함과 신성함이 공존하는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이다.

천왕봉 실개울이 10㎞에 달하는 준령 계곡을 굽이치며 내달려 소와 담, 폭포를 만들어 그야말로 선경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칠선폭포 등 7개의 폭포와 비선담 등 33개의 소(沼)가 온갖 사연을 담은 채 옥구슬 목걸이처럼 꿰어있다.

물길만 있지않다. 울창한 숲에 반달가슴곰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 수백종이 서식하고 있어 보존가치가 여느산을 압도한다. 지리산 야생 반달곰이 마지막까지 살았으며 특히 생태계 복원을 위해 자연 방사한 곰이 지금도 이곳에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상층부에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란 애칭을 가진 붉은 나무, 할아버지 주목은 신비롭기까지하다. 800년 수령에 두세명이 안아야 할 정도 크기의 국내 최상급 주목이다. 태백산 주목과는 달리 키가 훤칠하게 크고 세력이 왕성해 천년 이상 생존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수종의 변화나 양이 줄지 않는 안정된 상태의 국내 최고 활엽수 극상림의 전형도 나타난다.

너무 험준한 나머지 히말라야 등 해외 원정을 가는 산악인들의 극기훈련 장소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마폭포에서 마지막 1,5km구간은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정도로 급경사의 지형을 보여 체력안배를 잘 해야만 오를 수 있다.

그러나 한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하는 바람에 국립공원 측에서 1999년 특별보호구를 지정해 출입을 제한한 뒤 2008년 부분개방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본보 취재팀은 10년 전인 2008년 칠선계곡을 탐방한 뒤 2018년 다시 가을 비선담을 찾았다.



 
명산_지리산칠성계곡

마천면 추성리에서 계곡을 건너면 오름길이다. 왼쪽 용소 가는 길을 버리고 직진하면 먼당에 공터와 정자나무가 군락을 이룬 고개가 나온다. 두지터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SUV차량 세대가 주차해 있다.

장석윤 이장은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해 “추성이라는 별자리가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또 다른 유래는 “가야국의 구형왕이 추성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개에서 정상교를 건너 10여분 진행하면 두지터이다. 과거 움푹 파인 특이한 지형때문에 사람들이 모여 화전을 일구고 살았던 곳이다. 지금은 3가구가 화전대신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이곳 주민들은 산나물을 뜯거나 호두 감 버섯 등 임산물을 채취해 연명했다. 나무를 베어 장작을 만든 뒤 마천이나 함양읍으로 내다 팔기도 했다. 이를테면 병마가 미치지 않고 난리도 없으며 게으르지 않다면 딱 그만큼 먹을거리가 있고, 거기다가 경치까지 좋은 그런 곳, 이상향까지는 아니라도 소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두지터는 그런 곳이라고 생각됐다.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계곡 넘어 국골에 진을 치고 있을 때 급한 대로 군량미를 조달한 지역이라는 전설도 있다. 실제 지형을 둘러보면 쌀뒤주처럼 생기긴 했다. 두지터에서 터진 오른쪽은 백무동길이다.



 
단풍이 들어가는 칠선계곡


머리 위에 가시오가피가 익어가는 두지교를 지나고 대나무밭을 통과하면 곧 계곡을 가로지르는 칠선교 출렁다리를 만난다. 2011년 태풍 무이파의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져 물이 불어나면서 다리가 유실돼 새롭게 복구한 것이다.

출렁다리에 서서 바라보는 경치가 아름답다. 포말로 부서지는 폭포수 물길 양 옆으로 단풍이 짙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계곡의 하층부인 만큼 소의 깊이와 크기가 크다. 출렁다리를 건넌 뒤 올라서면 한두뼘짜리 다랭이논 두세개 남짓한 공터가 칠성동이다. 주민들은 그냥 칠시라고 부른다. 한 가구가 살고 있는데 옛마을 이라는 간판이 있는 것으로 미뤄 과거에는 몇 가구가 살았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축대와 계단식 논의 흔적도 보인다. ‘산삼과 커피’를 소개한 언발란스 한 메뉴판이 미소를 부른다.

주변으로 울창한 수림과 벼랑이 어우러진 비경, 추성 망바위에 올라선다. 원시림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제각기 좋은 위치에 터를 잡고 자라고 있다. 어쩌면 저 나무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은 최정점의 나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제각기 살아서 우람한 나무로 성장한 것이리라.



 
신비로운 옥빛을 보여주는 옥녀탕


발아래 빽빽한 수림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계곡의 물빛이 신비롭다. 산호초 바다의 색깔처럼 매혹적인 에메랄드빛을 낸다. 우리말로 옥빛, 금강산 상팔담이 그런 빛임을 아는데 칠선계곡의 물빛이 이와 같다.

등산로는 다시 계곡으로 방향을 틀어 선녀탕에 다가간 다. 아치형 데크가 설치돼 있어 편하게 건널수 있지만 태풍이나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는 절대 출입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곳이다. 신비로움을 보여주는 계곡이지만 때로는 죽음의 골짜기로도 변한다. 화려하고 선정적인 외모의 여인이 남자를 파멸로 이끈다는 치명적인 위험, 두얼굴을 가진 계곡의 팜므파탈.

선녀탕에는 칠선녀와 어리숙한 곰, 똑똑한 사향노루의 전설이 전해져 온다. 선녀들의 목욕장면을 본 곰이 흑심이 발동해 그들이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옷을 훔쳐 바위 틈에 숨겨 버렸다. 옷을 잃어버린 선녀들이 당황해 할때 노루가 나타나 옷을 건네 무사히 날아 올라갔다. 멍청한 곰이 바위틈에 누워있던 노루의 뿔을 나뭇가지로 잘못 알고 옷을 숨겼던 것이다. 그 후 은혜를 베푼 노루는 칠선계곡에서 살게 했으며 곰은 국골로 내쫓겼다고 한다.

바로 위에 있는 옥녀탕은 선녀탕보다 규모도 크고 생김새가 더 시각적이다. 하나의 소에 푸른색과 옥빛이 동시에 보이기도 한다. 또 한번 그에 빠져 넋 놓고 바라볼 뿐이다.

이 시기 이곳에는 산빛과 물빛 대지의 빛이 보석처럼 아롱진다. 햇살은 더 강렬하고 나뭇잎은 더 붉어지며 대지는 더 푸르다. 생명력 강한 이끼는 차가운 바위도, 죽은 나무도, 살아 있는 나무에도 곳곳에 달라붙어 생명을 불어넣는다. 주체할수 없는 자신의 초록DNA를 천지 사방에 퍼뜨리는 형국이다.

마폭까지 4.2km 천왕봉까지 5.8km가 남은 지점, 선녀들이 날아간 비선담에 닿는다. 비선담을 제대로 보려면 흔들다리 위로 올라가야 한다. 옥녀·선녀탕과는 달리 물빛이 파란빛을 띤다. 하늘이 열려 있어 그 색이 수면에 살며시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담으로 고개를 내민 나뭇가지는 조금씩 단풍이 들고 있었다. 이 추세라면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23일)즈음에 절정이 될 것이다. 비선담 통제소까지는 400m를 더 올라가야한다. 한 능선을 넘어서면 이 구간 최고의 비경을 만날수 있다.

이름을 갖지 못한 아담한 폭포인데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담으로 물을 콸콸 쏟아낸다. 단풍이 배경이 돼주는 시기가 되면 연로한 사진가들이 느린 걸음으로 찾는 곳이다. 200m정도 더 올라가면 비선담 통제소, 산문이 잠겨있어 더 이상 오를수는 없다. 천왕봉까지 5.4㎞ 구간이 특별보호구로 지정된 곳이다. 천왕봉에 가려면 사전예약이 필요하다.

현재 칠선계곡 탐방은 5~6월과 9~10월 2차례에 걸쳐 월·토요일에 하루 60명만 가능하다. 월요일에는 대륙폭포와 삼층폭포~천왕봉까지 올라가기 프로그램(9.7㎞), 토요일에는 삼층폭포까지 탐방하는 되돌아오기 프로그램(13㎞)을 운영한다.

칠선계곡 반만 보고서, 단풍도 반만 보고서 되돌아오는 길이지만 가슴에는 온통 푸른물감과 초록물감, 붉은 물감이 물든 것 같았다. 한동안 수채화 같은 꿈을 꿀수 있을 것 같았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하나의 소에 옥빛과 파란빛이 동시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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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20181009지리산 칠선계곡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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