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칼럼] 갚으면 사업가, 못 갚으면 사기꾼 ?
[법률칼럼] 갚으면 사업가, 못 갚으면 사기꾼 ?
  • 경남일보
  • 승인 2018.10.2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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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준(법무법인 유안 변호사)
‘빚도 능력이다’라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농담이다. 하지만 실제로 돈을 벌어들이는 능력(수입)이 좋거나, 신용을 담보하는 능력(자산)이 많아야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빚(채무)을 질 수 있는 사람은 곧 능력(신용) 있는 사람이라는 등식을 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것만은 아니다.

빚을 질 수 있는 능력, 곧 신용은 이를 적절히 활용(活用)할 수만 있다면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남용(濫用)하게 된다면 파산에 이르게 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상의 처벌까지도 받게 만드는 양날의 검이다. 특히 요즘 같은 경제 불황의 시기에는 채무의 변제가 이루어지지 않아, 형사고소를 당하고 결국에는 사기죄로 처벌받는 경우가 결코 드물지 않다. 그렇다고 민사상 ‘채무불이행’이 형사상 ‘사기’와 동행하는 개념일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민사상 채무불이행과 형사상 사기죄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성립하기 위한 요건에서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민사상의 개념인 ‘채무불이행’과 형사상 처벌대상인 ‘사기’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돈을 빌리고자 할 때(채무 부담 행위 당시) 채무자에게 돈을 갚겠다는 의사(변제의사)와 돈을 갚을만한 능력(변제능력)이 모두 있었는지 여부이다.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변제 능력이 없는 채무자가 만연히 변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돈을 빌리는 행위는 그 자체로 ‘사기죄’가 성립되고, 이후 변제에 성공하여 채무불이행에 빠지지 않게 되더라도 사기죄가 성립하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물론 실제로는 돈을 빌린 것이 사기에 해당하더라도 돈을 빌린 후 사업이 잘 풀려 돈을 갚는 데 성공한 경우라면 채권자가 이를 문제 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빌린 돈을 갚고도 사기죄로 처벌받게 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앞서 말했듯이 사기죄가 성립하는 것은 변제능력과 변제의사가 없이 돈을 빌리는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 “갚으면 사업가, 못 갚으면 사기꾼”이란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말은 이런 결과론적 현상에 대한 대중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만약 이러한 인식이 만연해진다면 결국 ‘일단 빌리고 잘 되면 갚지’라는 식의 도덕적 해이에 빠질 수 밖에 없고, 이는 결국 사소한 행위가 범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불감증을 낳을 수 있다.

위에서 본 사기죄의 법리는 단순히 돈을 빌리고 갚는 경우뿐만 아니라, 돈을 받고 집을 지어 주기로 하는 도급계약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도급계약을 체결할 당시에 계약 내용대로 집을 지어줄 수 있는 의사나 능력이 없으면서 공사비를 받았다면 사기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물론 건축업자가 계약 체결 당시에는 집을 지어줄 의사나 능력이 있었지만, 여러 공사를 동시에 진행하던 중, 사정이 생겨 결과적으로 집을 완성해주지 못한 경우라면 결론은 달라질 것이다.

즉, 돈을 빌리거나, 혹은 집을 지어주기로 하고 돈을 받는 것이 ‘사기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결과적으로 돈을 못 갚았다, 결과적으로 집을 완성하지 못했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돈을 받을 당시에 갚을 능력, 갚을 의사가 있었나’에 달린 것이다. 필요해서 무심코 돈을 빌린 ‘사업가’의 행위가 자신을 TV나 영화로만 보던 ‘사기꾼’으로 만들 수도 있음을 늘 주의해야 할 일이다.
 
오동준(법무법인 유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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