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시월의 마지막 밤
또 한 번 시월의 마지막 밤
  • 경남일보
  • 승인 2018.10.2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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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전 경남일보 국장)
정재모

‘♬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사랑과 이별을 담은 이 노래의 제목은 ‘잊혀진 계절’. 이용이 1982년에 불러 크게 히트했다. 뒷날 같은 제목의 영화까지 나오면서 인기는 더 치솟았다. 이제는 대중가요의 고전 반열에 올랐다 해도 좋을 노래다.

노래가 인기를 끈 이유로 몇 가지가 꼽혔다. 트로트 일색에 식상한 젊은 세대가 서구 풍의 발라드 음악에 환호했다는 분석도 그 중 하나였다. 전문가들은 ‘잊혀진 계절’을 세미발라드로 분류했고 국내 발라드의 첫 싹으로 봤다. 그 대중음악사적 의의 때문인지 방송들도 이 노래와 가수를 꾸준히 불러냈다.

나는 이 노래의 인기가 지속되는 까닭을 노랫말에서 찾는다. 물론 가수의 감미로운 음색과 창법, 새로운 풍의 멜로디도 인기의 요인이 되었을 거다. 하지만 가사 속 ‘시월의 마지막 밤’이란 감상(感傷)적 구절에 힘입은 바가 더 크지 않을까 한다. 지금도 기억하는, 헤어진, 10월의 그 마지막 밤이란 표현은 얼마나 애상적인가!

이 가사는 고 박건호가 썼다. 그는 이수미의 ‘내 곁에 있어 주’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조용필의 ‘모나리자’ 같은 쟁쟁한 노랫말을 만든 80년대 가요계 전설이었다. 유행가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대개 가수 이름에 그치거나 기껏 작곡자를 아는 정도다. 그러나 ‘잊혀진 계절’의 작곡자(이범희)를 아는 사람은 드물어도 작사자는 많이들 기억한다. 조락(凋落)의 계절 분위기와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감성적 어휘 덕분일 게다.

노래가 나온 이후 장년의 나이까지 거의 해마다 이날이면 몽켜서 노래방엘 갔다. 그 노랫말이 핑계였다. 그리곤 ‘시월의 마지막 밤’을 자정이 넘도록 내지르곤 했다. 근 삼십 년을 그랬으니 가사의 힘이 이렇다.

처음에는 ‘구월의 마지막 밤’으로 했는데 음반출시 시점에 맞춰 ‘시월’로 바꿨다고 한다. 이 일화는 굳이 시월이어야 할 필연이 노래에 담겨 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큰 의미라도 있는 양 그렇게들 좋아했고, 명 구절이 되었다. 나도 살면서 이 가사 구절만큼 널리 오래 기억될 멋진 일 한 가지만 남길 수 있다면 좋겠다.

다시 ‘시월의 마지막 밤’이 돌아온다. 또 한 번의 가을이 깊어가고 있는 거다. 올핸 모처럼 노래방엘 찾아갈거나. 몇몇이 어울려 치맥에 건하게 젖어 시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싶어진다. 덧없는 세월의 무상감, 그렇게 달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정재모(전 경남일보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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