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오늘의 밥상=내일의 지구
[여성칼럼] 오늘의 밥상=내일의 지구
  • 경남일보
  • 승인 2018.10.3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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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정(경상남도기후변화교육센터 기후강사)
식탁은 지구다

중국서 자란 고추/미국 농부가 키운 콩/이란 땅에서 영근 석류/포르투갈에서 선적한 토마토/적도를 넘어온 호주산 쇠고기/식탁은 지구다//어머니 아버지/아직 젊으셨을 때/고추며 콩/석류와 토마토/모두 어디에서/나는 줄 알고 있었다/닭과 돼지도 앞마당서 잡았다/삼십여 년 전/우리 집 둥근 밥상은/우리 마을이었다//이 음식 어디서 오셨는가/식탁 위에 문명의 전부가 올라오는 지금/나는 식구들과 기도 올리지 못한다/이 먹을거리들/누가 어디서 어떻게 키웠는지/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누가 어디서 어떻게 보냈는지/도무지 알 수 없기 탓이다/ 뭇 생명들 올라와 있는 아침이다/문명 전부가 개입해 있는 식탁이다//식탁이 미래다/식탁에서 안심할 수 있다면/식탁에서 감사할 수 있다면/그날이 새날이다/그날부터 새날이다 (출처, 식탁은 지구다/이문재)

오늘 아침 밥상에 올라온 반찬의 생산지와 생산자를 아는 사람은 과연 몇명 이나 될까?

우리가 지금 즐기고 있는 풍성해진 식단은 우리가 나고 자란 환경에서 만들어진것만으로 꾸려지지 않는다. 밥상을 받아들면 반드시 한 두가지 이상의 외국산이 들어있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어떻게 생산되고 얼마나 안전한지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저 편하고 빠르게 먹고 싶을 뿐이다. 갈수록 신선한 재료를 이용해 직접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나 능력을 지닌 사람이 줄고 있다. 그사이 우리 식탁은 점점 자연과 멀어지고 있다.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던 적도부근 태평양의 작은섬 나우루는 ‘정크푸드의 섬’으로 불린다.

호주와 일본의 지배를 받던 나우루는 1968년 독립 후 인광석 직접 채굴로 어마한 부를 축적했다. 정부는 인광석으로 벌어들인 돈을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분배하고. 그 결과 1980년대 나우루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에 달했다. 집마다 자동차를 두세대씩 사들이고 고급 가전제품으로 집을 채웠다. 하지만 이 같은 삶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원을 내다팔며 누린 부의 끝은 처참했다. 90여 년간의 인산염 광산 개발로 환경이 오염돼 맑은 물은 더 이상 찾기 어려워졌고, 삶도 피폐해졌다. 채굴을 위해 나무를 베어버려 섬의 2/3가 황무지가 되면서 가뭄이 이어지고 자기 땅에서 나는 먹을거리는 사라져 버렸다.

서구식 생활에 익숙해진 나우루 사람들은 대부분의 끼니를 수입 냉동식품과 각종 정크푸드로 해결했다. 외국산 인스턴트식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전통 먹거리 시장이 몰락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만 어업은 무너졌다. 이곳 사람들은 더 이상 물고기를 잡거나 채소를 키우지 않는다. 국민 중 90퍼센트는 비만과 과체중에 시달리고 있다. 성인의 대부분이 당뇨병을 앓고 있다.

아이들은 초콜릿과 사탕으로 끼니를 때우고, 어른들은 눈을 뜨자마자 비스킷과 햄을 먹는다. 정크푸드는 나우루 사람들의 입맛만 점령한 게 아니었다. 수풀 속, 바닷가, 고원과 라군 주변, 모두 쓰레기 천지로 변했다. 탄산음료 캔과 맥주캔, 비닐 포장재 등이 섬을 뒤덮어 버렸다. 쓰레기 처리시설도 없고 재활용도 없는 이 섬은 쓰레기장이 돼 버렸다.

전문가들은 나우루의 현재 상황이 지구의 미래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정크푸드의 홍수, 바다 건너 어마어마한 거리를 옮겨다니는 식재료들, 토착 먹거리의 붕괴, 비만과 당뇨병, 쓰레기섬, 가뭄이 지구의 ‘미래’라니 벌써부터 힘이 빠진다.

아픈 지구에서는 그 어떤 것도 건강하게 먹을 수 없다. 오염된 땅과 물, 대기, 무너진 생태계에서 온전한 먹거리를 얻어내기란 불가능하다. 아픈 지구를 회복시키는 일이 우선이다.

건강한 지구에서 안전한 음식을 먹기 위한 해결책은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달렸다.

미래의 인류는 어떤 식탁에 앉게 될까? 자본의 결과물인 인스턴트로 뒤덮인 식탁일까, 아니면 직접 기른 농산물로 이루어진 식탁일까?

지금을 살고 있는 당신의 ‘오늘의 밥상’이 ‘내일의 지구’를 결정할 것이다.

 
오해정(경상남도기후변화교육센터 기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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