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와 함께 하는 토박이말바라기(9)
이창수와 함께 하는 토박이말바라기(9)
  • 경남일보
  • 승인 2018.10.3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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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과 아랑곳한 토박이말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도 지났고 지리산에 첫눈이 내렸다는 기별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철은 겨울이 된 것 같지만 여전히 우리 둘레에는 가을이 있습니다. 가을하면 떠오르는 ‘단풍’과 아랑곳한 토박이말을 알아볼까 합니다.

‘단풍’이라는 말이 ‘한자말’이라는 것을 다들 잘 아실 겁니다. 한자로 풀이를 하면 ‘붉은 단’, ‘단풍 풍’입니다. ‘단풍’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푸르던 나뭇잎이 붉은빛 노란빛으로 물드는 현상을 가리키고, 하나는 여러 가지 나무들 가운데 ‘단풍’이라는 나무를 나타냅니다. 흔히 우리는 앞의 뜻으로 ‘단풍’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런 뜻과 같거나 비슷한 뜻을 가진 ‘토박이말’이 있다는 것을 듣거나 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단풍’과 뜻이 비슷한 토박이말을 만들어 쓰는 사람을 보기는 했습니다. 우리가 알록달록하게 곱게 만든 아이의 옷을 ‘고까옷’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알록달록하게 잎이 바뀌었으니 ‘고까잎’이라고 하자는 것이지요. 저도 가을이 되면 이 말을 쓰곤 합니다. 그리고 옛날 배움책에서 ‘고운 잎’이란 말을 쓴 것을 봤습니다. 왜 ‘단풍’이란 말을 안 쓰고 ‘고운 잎’이라 했을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1학년이 배우는 책이다 보니 ‘단풍’이라는 어려운 한자말보다 쉽게 풀이한 ‘고운 잎’이라는 표현을 쓴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배움책을 만드는 사람들한테서 찾아보기 어려운 마음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단풍’과 ‘고운 잎’ 가운데 어떤 말이 느낌과 뜻을 더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몇 몇 아이들을 뺀 많은 아이들이 ‘고운 잎’이 더 쉽다고 했습니다. ‘단풍’을 쓰지 말고 버리자는 게 아니라 ‘단풍’을 써야 할 때는 쓰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고운 잎’이라는 말을 쓰면 남다른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단풍’을 어떻게 보셨는지 알 수 있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요즘에는 한자 자전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단풍 단’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지만 옛날 자전에는 ‘신나무 풍’이라고 풀이를 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나무’는 ‘신+나무’ 짜임으로 된 말인데 여기서 ‘신’이 바로 우리가 ‘목이 쉬다’ ‘밥이 쉬다’ 할 때 ‘쉰’에서 왔다고 풀이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풀빛을 띄고 있던 잎이 붉게 또는 누렇게 쉬었다고 본 것입니다. 밥맛이 바뀌어 쉬는 쉰밥처럼 나무가 쉬었다고 본 것이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런 풀이가 틀림없이 맞는 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그렇게 이름을 짓지 않았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그럴듯한 풀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면 이것을 써서 새로운 말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쉰밥’, ‘쉰나무’가 있으니 ‘쉰잎’도 얼마든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쓰시던 말을 이어받아 다음 사람들에게 물려주는 일에 마음을 가 쓰는 것은 마땅하지만 새로운 말을 만들 때 우리말다운 토박이말을 살린 새말을 만들 수 있도록 길잡이를 하고 그런 바탕을 마련해 주는 것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바탕을 튼튼히 하는 지름길은 어릴 때부터 토박이말을 넉넉하게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라는 것도 잊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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