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플러스<207>광양 억불봉
명산플러스<207>광양 억불봉
  • 최창민
  • 승인 2018.10.3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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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
남해고속도로 하동, 광양지역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가장 도드라지게 잘 보이는 산이 억불봉(1008m)이다. 이 산줄기에서 가장 높은 산인 100대 명산 백운산(1227m)이 있긴 하지만 억불봉은 상대적으로 거대한 투구를 쓰고 있는 듯한 특이한 조형성 때문에 더 돋보인다.

‘언젠가는 저 산에 가 보리라’ 라는 로망, 그런 마음에 가졌던 그 시절이 언제 적인지 알 수 없다. 섬진강 너머 똬리봉 백운산 억불봉으로 이어지는 남도의 산줄기 호남정맥 상에 걸출하게 솟아오른 명산, 명봉이 억불봉이다.

이 산을 통해서 산이란 건 역시 다가가서 올라봐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노랭이재에서 바라본 억불봉의 조형성은 멀리서 허투루 봤던 것보다 기대 이상으로 수려하다.

정상 부근의 우람한 바위군은 모산재 암릉군에 버금가고 그 아래 오른쪽 사면 섬진강방향 어치계곡으로 떨어지는 유려한 곡선은 피라미드의 그것보다 더 아찔하고 감각적이다.

이 산줄기 백운산과 매봉사이에서 발원해 섬진강으로 합류하기까지 7km를 내달리는 어치계곡은 낮에도 이슬이 맺힌다는 오로대와 용소가 가을 산행객을 불러들인다. 이 산의 원래 이름 ‘업굴산’을 있게한 동쪽 수직절벽의 굴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 있는 일이다.

다가가서 보면 더 아름다운 산, 억불봉은 그동안 십 수년동안 동경해온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산이었다.



 
억불봉에 닿기전에 있는 암봉 감암산 누룩덤을 닮았다.
명산_광양억불봉

오전 8시 20분, 포스코 백운산수련원까지 차량이 올라간다. 수련원 진입로 주변엔 사람들의 힐링 장소로 손색이 없을 만큼 숲이 빽빽하게 들어차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짙어가는 가을, 실계곡의 물소리가 경쾌하고 알록달록한 단풍마저 달콤한 향기를 뿜어낸다.

수련관 본관 왼쪽 등산로가 노랭이재, 오른쪽은 노랭이봉으로 바로 올라가는 길이다. 억불봉에 가려면 노랭이봉이나 노랭이재에서 통해서 왼쪽 방향으로 길을 잡아야한다.

둘레길 임도를 걸어 출발 10분 후, 갈림길이 있는 곳에서 숲으로 들어가면 서울대 남부학술림 간판이 보인다. 침엽수인 잣나무를 인공 조림한 것 외에는 사람주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서어나무, 고로쇠나무 등 천연 활엽수림을 형성하고 있다. 그 중 백운산 고로쇠는 주민소득 작물로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한다. 산림식생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식생조사가 진행 중이다.

아침손님을 맞기라도 하는 듯 크고 작은 새들은 나뭇가지 사이를 곡예사처럼 날아다닌다.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이름 모를 새에서부터 발바닥만한 딱따구리 어치까지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등산객을 반겼다. 수종이 그런 나무들이어서인지 주변 등산로에는 피색 단풍보다는 생강나무 이파리와 낙엽송의 노란색, 즉 황풍(黃楓) 많이 보였다.

수련원을 출발한지 채 한 시간이 못돼 노랭이재에 닿는다. 재 오른쪽 편 노랭이봉은 안테나와 이정표, 바위군이 맨눈에 보일 정도로 가깝다. 고개를 넘어가면 구황마을로 가고 왼쪽이 진행해야 할 억불봉이다.

구황마을 방향 첫계곡에 생쇠골이 있다. 일제때 광양출신의 독립운동가 황벽학(1876∼1927)선생이 일본군의 조총에 맞서 싸우기위해 지리산 백운사의 포수를 모아 대장간을 만들어 각종 무기를 제작했다고 해서 생쇠골이다. 철광석을 녹인 야철로는 현재의 고로와 비슷한 형태였다고 한다. 그의 기념비는 수어저수지 한켠에 세워져 있다.

노랭이재에서 숨을 고른 후 전망이 좋은 능선에 올라선다. 드디어 위용을 갖춘 억불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맨 왼쪽 형제바위에서 시작되는 마루금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봉우리가 하나, 둘, 셋…, 다섯째 봉우리가 정상이다. 그리고 다시 고도를 낮춰 일명 바구리봉이라고 부르는 암봉으로 연결되고 치마폭 같은 선을 섬진강 쪽으로 떨어뜨린다. 물비늘이 반짝이는 큰 호수는 어치계곡의 물이 잠시 머물다가는 수어호이다. 수어호 한켠에 황병학선생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제부터 졸참나무 서어나무 등 자잘한 나무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낙엽 밟는 소리, 바람 소리, 또 한번 가을이 내 곁에 스치고 있음을 느낀다. 낙엽과 터널을 빠져나가면 평평한 대지 위에 하늘이 뚫린다. 백운산과 억불봉이 갈리는 헬리포트지점이다. 오른쪽이 억불봉이니 억불봉은 호남정맥 상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돌출 봉우리인 셈이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듯한 형제바위를 만난다.

9시 40분, 형제바위를 지나고 나면 이 산 최고의 절경인 거대한 바위군과 맞딱뜨린다. 감암산의 누룩덤, 모산재의 거친 암릉, 우두산 의상봉, 설악산 울산바위를 뒤섞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오른쪽에 이마 눈 코 입이 선명한 큰바위얼굴 형상이다. 철과 데크를 조합해 등산로를 정비해 놓아 오르기는 불편함이 없다.

큰 바위 얼굴을 오를 때 고도를 높이는 것이 아까워 정경을 둘러보거나 사진을 촬영하면서 느릿느릿 올라가는 여유를 가져볼 수 도 있다.



 
안개낀 억불봉 정상


백운산으로 연결되는 능선 마루금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보이지 않았다.

눈 아래 안개 속에 전남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계곡 중 하나인 어치계곡이 있다. 백운산과 매봉사이의 물줄기가 억불봉 오른쪽으로 흘러 어치계곡을 만든다. 이 계곡에선 오로대와 용소 구시소가 유명하다. 암반으로 형성된 오로대는 바위사이로 물줄기가 쏟아진다. 여름 한낮에도 이슬이 맺힐 만큼 시원하다고 해서 오로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경관이 빼어나 옛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시문을 읊었다고 한다. 오로대 아래 용소는 지추 혹은 지살고지라고 부른다. 가을에도 사색을 즐기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정상이라 생각하고 올랐던 봉우리엔 이정석은 없고 이른 아침 조용한 암자에 비구니가 쓸어놓은 앞마당처럼 낙엽 하나 없이 깨끗했다.

정상은 그 뒤에, 또 뒤에 있었다. 암반 위에 놓인 로프를 잡고 올라야하거나 스틱에 의지해서 오를만큼 높은 경사도를 보인다. 아기자기한 맛을 느낄수 있는 공간이다.

출발 2시간이 채 안돼 정상에 닿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속에 홀로 남은 듯한 느낌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맑은 날 억불봉은 사방 막힘없는 풍경을 보여준다. 지리산과 호남정맥 봉우리들이 꿈틀거리 듯 아스라이 내다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이 산을 업굴산이라 불렀다. 풀이하면 높고 험준한 봉우리(山+業)에 굴(窟)이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굴은 억불봉 동쪽 직벽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탐승하기좋아하는 사람들은 위험하기 그지 없는 이 직벽에 있는 굴을 찾아 암벽을 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일반 등산객이라면 위험하기 때문에 찾지 않는 것이 좋다. ‘신증동국여지승람’(광양)에 ‘업굴산은 백계산(白鷄山·현재의 백운산)의 동쪽 지맥이다’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조선지지자료에 진상면 성두리에 있는 산으로 억불봉(憶佛峰)이 수록돼 있다. 즉 업굴산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억불봉으로 변화되고 후에 한자가 ‘생각할 억(憶)’에서 ‘헤아릴 억(億)’으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출처, 한국지명유래집>

간단한 점심이라도 풍경이 좋은 곳이어야한다고 고른 곳이 하필 하루살이가 창궐하는 숲지대여서 신문을 펴다말고 쫓기듯 옮겨야하는 일은 성가셨다. 노랭이재를 거쳐 노랭이봉에 올랐다가 수련원 방향으로 하산했다. 짧은 등산로여서 시간은 오후 1시를 가리켰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노랭이재 억새언덕에서 바라본 억불봉

gn20181026광양억불봉 (42)
형제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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