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20]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20]
  • 경남일보
  • 승인 2018.11.0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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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드레흐트 미술관
 
풍경 속 마부들의 휴식(Horsemen Resting in a Landscape). (Aelbert cuyp)


풍경화만큼 마음 편안히 감상 할 수 있는 그림이 또 있을까. 초상화를 마주할 땐 잘생김과 예쁨을 따질 수 밖에 없고, 정물화를 볼 때는 각각의 사물이 나타내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애를 먹곤 한다.

네덜란드에 있는 대부분의 미술관에서는 풍경화나 일상생활을 담은 장르화를 전시실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유럽의 타 미술관들에 비해 유독 이러한 종류의 그림이 많이 걸려있는 덕분에 미술관을 찾은 방문객들이 부담 없이 관람을 즐길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 중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도르드레흐트(Dordrecht)에서 네덜란드 풍경을 만나보자.

도르드레흐트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과거 도르드레흐트는 풍부한 수자원을 가진 덕분에 무역을 위한 교차로로써 좋은 입지를 가졌을 뿐 아니라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도시다. 곡물, 나무, 설탕, 와인 등 당시 중요하게 여겨지던 물자들이 이 도시를 거쳐가게 되어 부와 활기가 넘쳤던 도르드레흐트는 1220년 남홀란드 주의 최초 도시가 되었다. 네덜란드에서 도르드레흐트라는 도시가 가지는 의미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곳은 지금의 네덜란드가 하나의 국가가 되기 위한 첫 발판이 마련된 도시였는데, 각 도시의 수장들이 모여 국가의 종교적, 정치적 자유를 위한 첫 회의가 열렸던 곳이 바로 이곳 도르드레흐트다. 네덜란드에게 종교적으로는 가톨릭을 강요하고 정치적으로까지 압박을 가했던 스페인에 맞서며 1572년 자유를 위해 뜻을 함께한 12개 도시의 수장들은 도드레흐트에서 비밀 회동을 가졌고 이 결의를 통해 지금의 네덜란드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도르드레흐트의 전경(View of Dordrecht). (Jan Van Goyen)


한편 14세기 무렵부터 화려한 번영기를 맞아 남홀란드 주의 중심 역할을 했던 도르드레흐트는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전까지 유럽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시기를 보냈다. 이러한 도시를 중심으로 예술이 발전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였을 터. 도르드레흐트 미술관은 도시의 전성기 때 활동했던 이 곳 도르드레흐트 출신 화가들의 작품을 많이 소장 하고 있다.

대개 유럽의 박물관들이 왕가의 수집품을 기초로 한 곳들이 대부분이라면, 도르드레흐트 미술관은 시작점이 조금 다르다. 이 미술관은 예술을 사랑하는 애호가들과 수집가들에 의해 모습을 갖추었다. 1842년 사설단체로 시작된 미술관은 미술 수집가들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담당하다가 작품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도르드레흐트 미술 협회를 정식으로 개관했다.

미술 협회는 곧 100여 명으로 구성된 수집가 연합으로 커질 만큼 성장했고. 도드레흐트 시(市)의 협조는 물론이거니와 매입, 기부, 유산 등의 형태로 수많은 작품이 모여 다양시대와 장르를 아우르게 되었다. 국가 기관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미술작품을 사랑하고 좋은 작품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려는 선각자들의 배려와 보존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2010년 재단장한 도르드레흐트 미술관은 방문하는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프로그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힐링 공간으로써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도르드레흐트 풍경(view of Dordrecht). (Adam wilaerts)


도르드레흐트 미술관에는 찬란했던 이 지역의 역사와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그림들이 많다. 17세기 도르드레흐트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는 반 호이엔(Jan Van Goyen, 1596~1656)의 그림부터 알버트 카이프(Aelbert Cuyp, 1620~1691)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그려낸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그 시대로 거슬러 간 느낌을 받는다. 그림들은 대부분 큰 교회, 풍차, 배, 구름, 강 등으로 구성되어져 네덜란드 자연풍경의 특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화가들이 남겨놓은 그림 한 폭으로 사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의 모습을 선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네덜란드 특유의 드넓은 자연풍경을 화폭에 담은 화가들 중에 눈여겨 보아야 할 이가 있다면 단연코 알버트 카이프다.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유명한 지역 시장인 Aelbert Cuyp 마켓의 명칭도 도르드레흐트가 낳은 화가 알버트 카이프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그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기 때 활동했던 풍경화가로,네덜란드에서는 풍경화의 대가로 불리는 프랑스 출신화가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으로 여겨질 만큼 그 인기가 대단했다. 알버트의 삼촌,아버지 또한 저명한 화가였는데 그는 특히 초상화에 뛰어났던 아버지 야콥 헤리츠 쿠이프(Jacob Gerritsz Cuyp)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화폭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었는지, 그가 추구했던 그림 스타일이나 형식, 전반적인 색채 등은 아버지와 거의 비슷했다. 알버트는 네덜란드 풍경화에 독보적인 변화를 일으켜 새로운 반향을 불러온 화가로 손꼽히고 있으며 네덜란드의 드넓은 자연풍경과 강가 등이 그의 대표적인 그림 소재였다.

도르드레흐트 박물관은 1861년부터 명실공히 네덜란드 최고의 풍경화가 알버트 카이프의 작품을 사들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박물관이 사들인 첫 작품은 알버트의 작품이 아닌 그의 제자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두 번째 구입한 작품 역시 무명의 화가 작품인 것으로 판명이 되어 작품매입에 실패했지만, 그 다음해에 박물관은 처음으로 알버트의 초창기 풍경화 매입에 성공 했다. 1978년에는 램브란트 협회의 도움으로 알버트의 전성기 작품을 구입하며 현재 도르드레흐트 박물관은 알버트 카이프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네덜란드 강가 풍경(Dutch river view). (Aelbert Cuyp)


그의 풍경화는 현실감을 기본 바탕으로 하면서도 화가의 눈에 관찰 된 자연요소들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자신만의 표현 방식과 색채 사용에 의해 그림 속에서 재현실화 됨으로써 표현됐다. 알버트는 작품의 초안을 그릴 때 금빛이 도는 갈색잉크를 사용에 재빠르게 스케치 하곤 했는데, 그의 몇몇 작품에서 같은 스케치의 흔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스케치들은 완성작으로써의 작품이 아니라 그림을 위한 참고용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곧 알버트 작품임을 쉽게 알아보는 특징으로 자리잡게 됐다.

알버트의 전성기때 완성되었다고 알려진 이 작품은 늦은 오후 석양빛에 금빛으로 물든 배경을 뒤로 한 채 사냥개와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는 두명의 남자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림에서 인물들이 빠진다하더라도 풍경 그 자체만으로의 작품성을 운운하기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들은 마부지만, 귀족적인 느낌이 물씬 느껴진다. 그림의 배경은 알버트가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시켰던 림부르흐 지역의 네덜란드다. 이러한 조합은 도르드레흐트 귀족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고, 반세기가 지나서는 영국 귀족들의 관심까지 받았다.

안타깝게도 전해내려오는 알버트 카이프의 생애나 작품에 관한 기록이 많지 않아 사람들에게는 다소 덜 알려져 있지만, 루브르박물관, 내셔널갤러리 등지에서도 그가 그렸던 특별한 네덜란드 풍경을 만나 볼 수 있다.


주소: Museumstraat40, 3311XP, Dordrecht, 네덜란드
운영시간: 화~일요일 오전 11시~오후 5시
홈페이지: https://www.dordrechtsmuseum.nl/
입장료: 성인 12유로, 18세 이하 무료


 
네덜란드 도르드레흐트.
도르드레흐트 미술관 입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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