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기획/특집
[특별기획]진주성 대첩, 다시 보는 그날(5)전투3일차-심리전, 포로로 잡힌 진주 아이들
임명진  |  sunpower@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11.14  14:17:42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1)1차 진주성 전투, 그날을 만나다 ☜                 
2)유숭인 부대의 결사항전  ☜                       
3)전투1일차-탐색전, 적을 속여라 ☜                  
4)전투2일차-공성전, 왜군에 포위당한 진주성 ☜       
5)전투3일차-심리전, 포로로 잡힌 진주 아이들         
6)전투4일차-방어전, 성벽을 사수하라
7)전투5일차-총공세, 최후의 일전을 앞두고
8)전투6일차-승전보, 김시민의 비보
9)그날을 기억하며-전문가 인터뷰
 
   
 

그동안 수차례의 공격이 번번이 패퇴를 당한 터라 일본군도 초조해졌다. 작정한 듯 7일 아침부터 조총과 화살을 쏘아대며 거세게 공격해 왔다.

일본군의 파상공세에 맞서 진주성의 조선군도 필사적으로 방어에 나섰다.

성을 넘기 위해 각종 공성무기가 동원됐다. 성벽에 사다리를 걸치고 기어오르던 일본군들이 조선군의 저항에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조선군도 대포와 화살로 반격을 가하며 일진일퇴의 형세가 이어졌다. 일본군 적장 6명이 진을 나누어 전투를 지휘했다.

조총수 수천여 명이 성 안을 향해 일제히 쏘아대니 그 형세가 번개가 치고 우박이 내리는 듯 했으며 부르짖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러자 김시민은 군사들로 하여금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적들의 소리가 약해지기를 기다려 즉시 포를 쏘고 북을 울리며 응전하게 했다.

당시의 상황을 ‘고대일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수성과 공성은 치열하게 계속됐다. 성벽을 기어오르던 많은 일본군들이 목숨을 잃었다. 철환과 화살을 비 오듯 쏘아대니 일본군은 크게 무너져 곡소리가 하늘에 닿았다’

일본군의 공세는 해가 저물 때까지 계속됐다. 전투 와중에 진주성 부근 수십리 안에 있는 민가들이 일본군의 약탈과 방화에 잿더미로 변했다.

몇 차례의 밀고 밀리는 전투가 이어지고 밤이 되자 전투는 다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연이은 공격에도 진주성이 꿈쩍도 하지 않자 일본군은 심리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군 진영에는 많은 조선의 아이들이 포로로 잡혀 있었다. 일본군은 아이들을 시켜 매일 성 밖에서 서울말과 다양한 사투리로 이렇게 외치게 했다.

‘서울이 이미 함락하였고 팔도가 다 무너졌으니 새장 같은 진주성을 너희들이 어찌 지킬 것이냐. 일찍이 항복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오늘 밤에 너의 장수 머리 셋을 깃대위에 달리라’

진주성의 군사와 백성들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조선의 아이들을 포로를 잡아다 전쟁터로 내몰리게 한 일본군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성난 군사들이 즉각 대응을 하려고 하자 김시민이 엄명을 내려 경거망동 하지 못하게 했다.

대신 김시민은 군사와 백성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악공에게 한가롭게 거문고와 피리를 불게 했다.

이 소리는 일본군에게는 그들의 책략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오랜 출정으로 심신이 지쳐 있는 일본군에게 심리적 타격을 입히려는 목적도 있었다.

이 장면은 지휘관으로서의 김시민의 역량이 탁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섣부른 감정 대응보다는 이성적 판단으로 순간의 상황을 해결하는 냉철한 현장 판단능력을 보여 준 것이다.

몇 차례의 공세에도 진주성이 견고하게 버티자 일본군은 또 다른 계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일본군은 이날 인근의 대나무를 모두 베어와 묶기도 하고 엮는 작업을 했다. 소나무 가지도 많이 가져와 그들의 진 앞에 높이 쌓아 놓았다. 큰 나무를 베어 끊임없이 실어왔는데 진주성의 군사와 백성들은 그 용도를 몰라 바라보기만 했다.

그날 밤 야음을 틈 타 일본군은 몰래 낮에 만들어 놓은 대나무를 길게 엮은 죽편을 동쪽 성 밖에 세웠는데 그 길이가 수백 보에 달했다.

일본군은 대나무로 엮은 죽편 안쪽에 판자를 세우고 빈 가마니에 흙을 퍼 넣어 층층이 쌓아 언덕을 만들었다.

이것으로 성을 내려다보며 조총을 쏘고 조선군의 화살을 피하려는 심산이었다.

조선군은 처음에는 길게 늘어선 대나무 죽편이 가로막고 있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그 용도를 알게 됐다.

견고한 진주성의 방어막을 뚫기 위해 일본군도 갖은 묘수를 꺼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전투의 운명은 그렇게 건곤일척의 승부로 흘러가고 있었다.

글=임명진·그래픽=박현영기자

임명진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