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아기단풍의 손가락은 예뻐요
[교단에서] 아기단풍의 손가락은 예뻐요
  • 경남일보
  • 승인 2018.11.1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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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애리(수정초등학교 교사)
학교는 온종일 바람이 부는 곳, 바람을 만드는 곳이다. 남강을 타고 흐르는 바람이 연신 창을 두드리고 교정의 붉은 단풍은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고 깔깔 깔 웃음꽃을 피워 올린다

내 손 끝에 매달린 손가락임에도 불구하고 다섯 손가락은 길이가 서로 다르고 모양이 조금씩 다를 뿐만 아니라 쓰임새도 다르다. 교실에서 ‘호르르, 호르르’ 솟아났다 가라앉는 아이들의 작은 손은 피아골 계곡의 아기단풍을 꼭 닮았다. 가을 골짝을 다 태울 듯이 달려오는 붉은 잎들의 외침은 축구공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소년들의 환호다.

“선생님 저 애는 몸짓이 이상해요.” “이상한 말을 해요.” “함께 놀기 싫어요.” 친구와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키 재기를 한다. 조금이라도 내가 넘쳐 보이면 자랑거리로 떠벌리다가 부족해 보이면 고개를 푹 숙이고 자신 속으로 숨어버린다

너와 나는 무엇이 다른지 구별하고 변별해 내는 것으로 학교 교육이 시작된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변별하는 그 능력이 차별하는 기술이 되었다. 높낮이를 변별하고 밝기와 어둠을 변별해서 길게 줄서기를 시킨다. 쑥 내민 이 손가락은 동그란 손끝에 매달린 다섯 손가락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었다. 엄지의 자랑은 약지를 불편하게 하고 장지의 거드름은 무명지의 자긍심을 뒤흔드는 이유가 된다

“키도 작달막한 것이 무슨 형이야.” “나는 운이 없는 걸까? 왜 약하게 생겨서 끝에 매달렸을까?” “다섯이 모두 함께 움직여줘야 하나의 일을 할 수 있단다. 힘 없는 약지 하나를 다쳐도 혼자서는 세수조차 할 수 없을걸.” 아무도 그런 말을 해 주지 않았다.

오늘도 교실에서는 고개를 숙인 친구들이 작은 손을 내밀고 “나 좀 봐. 나 좀 봐 봐. ”빨갛지, 예쁘지?“ 소리로 다 만들어내지 못한 아우성들이 단풍처럼 붉어서 아프다. 나도 참 잘 했다고 스스로를 믿어보는 시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너도 참 예쁜 손가락이야.“

”친구랑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며 바람을 타는 손가락이야.“

”서로 다르기 때문에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거야.“

칠봉산 자락에 가을이 소복이 내려앉아 제 몫의 단풍이 될 아이들의 피처럼 붉은 내일을 꿈꾼다.
 
신애리(수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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