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만으로 좋은학교 우리가 해냈잖아요”
“공교육만으로 좋은학교 우리가 해냈잖아요”
  • 강진성
  • 승인 2018.11.15 17: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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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해성고등학교는 경남 남해군 남면 시골마을에 위치한 사립학교다. 한때 학생 수가 줄어 폐교 위기를 맞았다. 지금은 4년제 대학 진학률 경남 1위(2015~2016년학년도), 수도권대학 진학률 경남 1위(2017~2018학년도) 명문학교로 탈바꿈했다.

남해해성고의 변화는 2006년에 시작됐다. 당시 폐교 이야기가 나오자 하영제 남해군수가 달려간 곳은 ‘힐튼 남해 골프&리조트(현 아난티 남해)’다. 학교를 살려달라는 부탁을 받은 이중명(75) 아난티그룹 회장은 고민 끝에 인수를 결정했다. 그해 학교 이사장을 맡고 기숙사를 짓는데 사재 80억원을 쏟았다.
 
이 회장은 그때 결정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회상했다.

“할아버지가 교육감이었어요. 아버지는 교장을 지내셨죠. 난 사업만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집안에서 내려온 교육자 피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학교 인수제안을 받자 선친이 생각났어요. 생각하지도 못한 학교와 인연이 그렇게 맺어졌어요.”

그는 전국에 사업장을 거느리고 있다. 사회공헌 활동도 활발하다. 현재 공식직함만 15개에 이른다. 1년 365일이 모자란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곳은 남해해성고다.

“남해에 오면 리조트는 신경도 안 써요(웃음). 학교로 제일 먼저 와요. 학교 둘러보고 교직원, 아이들 만나는 게 좋아요. 학생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밥은 잘 나오는지, 학교에 필요한 건 없는 지 둘러봐요. 그게 내가 할 일이지 뭐(웃음).”

그는 전국을 누비면서도 수시로 학교 상황을 전화로 챙긴다. 학교 인터넷카페에 들어가 학생들 활동도 살핀다. 특히 교사 1명과 학생 9명(학년별 3명씩)으로 구성된 멘토링 활동에 관심이 제일 많다. 해성고 멘토링제는 학교 전통이자 상징이다. 이사장으로 취임하고 제일 먼저 내린 지시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만큼 교사와 학생은 가족으로 지낸다. 멘토링 가족은 3년 간 서로 이끌어주고 밀어주며 생활한다. 학습지도에서부터 봉사활동, 고민상담까지 서로 의지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동고동락하다보니 졸업 후에도 멘토와 멘티의 우정은 계속된다.

이 회장이 학교 인수를 결정한 가장 큰 계기는 공교육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그러기위해서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자율형 시골학교를 일으키기 위해서 기숙사와 멘토링제도가 그렇게 탄생했다. 시스템만 갖추면 교육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고 믿는다.

“저는 사실 아이들 성적에 관심이 없어요. 환경만 만들어주면 공부는 학생들이 알아서 하거든요. 오히려 대학진학에 실패하더라도 너무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라고 해요. 그게 인생 전부가 아니잖아요. 어린시절 올바른 인성을 갖추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학생들에게 무엇보다 배려하고 사랑하고 나누는 마음을 가지라고 말해요.”
▲ 이중명 회장이 학교 식당에서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학교를 방문하면 학생들 생활에 불편이 없는 지 가장 먼저 챙긴다.
그는 지금은 성공한 사업가지만 좌절도 있었다. 사업초기 세 번 연속 일을 실패해 큰 빚을 떠안았다. 목숨을 끊으려 속리산 정상을 향했다. 산을 오르는 중 바위에 앉아 울고 있는 학생을 목격했다. 충무(통영)에서 왔다는 학생은 대학 시험에 떨어져서 죽으러 왔다고 했다. 같은 처지였던 그는 학생을 위로하고 함께 산을 내려왔다. 하룻밤을 재운 뒤 학생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역시 포기했던 마음을 다시잡고 도전해, 재기에 성공했다.

회사와 학교 중에 어디가 우선이냐는 질문에 그는 “당연히 학교가 먼저고 더 잘돼야 한다”고 망설임없이 말한다. 성공을 이뤘으니 학교를 통해 사회에 베풀어야 한다고 믿는다. 올해로 학교를 인수한 지 12년을 맞았다. 그동안 친인척을 한 명도 교직원으로 쓴 적이 없다. 교사 선발권도 교장에게 전적으로 맡긴다. 학교 운영은 교직원 역할이고 자신은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관심을 쏟는 것이 몫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를 돈으로 보는 일부 사립학교에 대해 일침을 놓았다. “교사 뽑으면서 돈 받고, 친인척들 학교에 죄다 넣어서 월급은 나라에서 받고, 학생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니 사학이 욕먹는 거예요. 오히려 공립학교에서 하지 못하는 공교육 정상화를 사학이 해야 돼요. 제대로 학교를 운영하지 못하는 이사장들 만나면 쓴소리를 바로 해요. 학교는 돈벌이가 아니라 사회환원하는 곳이에요. 우리학교 같은 곳이 계속 나와야 해요. 그러려면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학교를 맡아야 해요. 지원하고 관심을 쏟아 인재를 길러야 해요.”

남해해성고는 폐교 위기에서 공교육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학원 하나 없는 시골마을에서 공교육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회장은 교직원들 노력이 컸다고 말했다. “우리 교직원들 정말 노력해요. 이런 시골에 누가 근무하려고 하겠어요. 밤이며 주말이며 교사들이 학생들을 챙겨요. 집에서는 싫어하겠지만 정말 학생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요. 그러니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고 사교육 없이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거예요.”

이중명 회장은 다시 한번 큰 돈을 들여 기숙사 추가 건립에 들어갔다. 좀 더 쾌적한 생활여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그가 학생들 생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의 어려운 시절 도움 줬던 이들이 생각나서다. 고교시절, 아버지가 퇴임 후 벌인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이집 저집 신세를 지며 간신히 학교를 다녔다. 연세대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는 등록금이 없어 포기하려 했다. 주변에서 십시일반 도움을 준 덕분에 입학이 가능했다. 그 빚을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해성고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강진성기자 news24@gnnews.co.kr

 
◇이중명 아난티그룹 회장 약력
-1943년 충남 부여 출생
-보성 중·고등학교 졸업
-1967년 연세대 건축공학과 졸업
-1995년 중앙관광개발(주)회장(현)
-1997년 한국청소년행동과학문화원 총재
-1999년 주식회사 청송 회장(현), 연세체육회 부회장(현)
-2002년 대명개발 회장(현)
-2003년 (주)아난티그룹(구. 에머슨퍼시픽 그룹) 회장(현)
-2005년 연세대 총동문회 상임 부회장(현)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현)
-2006년 학교법인 해성학원 이사장(현)
-2010년 연세대의료원 의료선교 발전위원회 위원장(현)
-2014년 재단법인 한국소년보호협회 이사장(현)
-2015년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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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2018-11-26 10:16:41
지방 시골학교가 얼마나 좋을지 궁금하군요 제 자식도 보낼지 말지 ?
인성을 등한지 하는 한국 교육에 얼마나 벗어나서 자유롭게 성장을 시킬지... ? 특히나 시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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