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갈비’ 수북한 산길을 걸으며
'햇갈비’ 수북한 산길을 걸으며
  • 경남일보
  • 승인 2018.11.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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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전 경남일보 국장)
정재모

지지난 주 어느 날, 밤비 뿌리고 바람이 불었다. 나뭇잎이 울긋불긋 물든 뒤로는 첫비요 바람일 성싶었다. 계절을 재촉한 풍우였을까.

이튿날 아침 동네 뒷산이 전날과는 다른 별천지로 변해 있었다. 샛노란 갈비(솔가리)가 숲 속 대지를 차렵이불처럼 수북이 덮고 있던 거다. 가랑비와 소슬바람이 연출한 조화였다.

곰솔과 리기다소나무가 떨군 황갈색 낙엽이 새뜻한 수채화 같다. 어줍은 시상(詩想)이라도 솟을법한 풍경이다. 하지만 다가온 건 저릿한 한 줄기 회상이다. 어린 시절 틈틈이 땔나무 하러 다닌 날들의 내 모습이 우련히 떠오른 거다. 아, 그 시절에 갈비가 이렇게 많았더라면… 뜬금없이 까꾸리로 한나절 욕심껏 검어보고 싶어진다.

대지를 환상처럼 뒤덮은 솔잎 무늬 ‘홑청’을 불땀 좋은 땔감으로만 바라보는 초동(樵童)의 정서라니! 그 시절 어중잽이 농가의 곤고했던 땔나무 사정이 여린 뇌리를 그리도 짓눌렀던가. 콕만 틀면 도시가스가 불살을 내뿜고, 전기장판 한 장에 ‘난방 걱정 뚝’인 시대다. 한데도 월동 연료의 압박감이 반세기 넘도록 사위지 않은 잿불처럼 가슴에 박여 있었단 말인가. 쓴웃음이 심중을 스친다.

잡잎 안 섞인 솔가리를 참갈비라 했다. 어쩌다 지겟자리 잘 놓아 참갈비 한 짐을 하는 날은 기분이 무척 좋았다. 승리한 운동선수처럼 묘한 자부심이 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런 날은 자주 있질 않았다. 아궁이에 불 때던 시절 참갈비 한 짐은 횡재와 동의어였다. 그 참갈비가 여기 산책길 야산에 지천인 거다.

에너지는 인류에게 언제나 걱정거리다. 오늘날은 석유 석탄 자원 고갈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에너지 결핍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에너지를 찾아내 그것을 필요에 맞게 전환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부족할 뿐이란 그의 주장(‘사피엔스’ 김영사)은 우리를 저으기 안심시킨다. 그런데 인간의 에너지 지식은 과연 무궁한 걸까.

의문은 눈앞의 태양광 논란으로 뻗어간다. 산야와 호수와 아파트 창과… “모조리 태양광 패널로 덮는 건 환경 파괴!” “탈원전은 선진국의 추세!”. 치고받는 주장들 중 우리 행복엔 어느 쪽이 맞을까. 태양광이 절대선이고 원자력은 지워야 할 악인가. 햇빛 에너지는 강진의 노래처럼 정말 공짜일까…

늦가을의 몽환적 풍경 앞에서 기껏 땔감 추억이나 긷는 깜냥에 주제넘은 의문이 끝이 없다. 국가 대사에 대한 무지렁이의 얕은 사념이 그 아침결 햇갈비 수북한 길 걸으며 두서없이 뻗치던 거다. 두멧골 백성의 조정 일 걱정인가.

 

정재모(전 경남일보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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