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의 벽을 넘어서
좌우의 벽을 넘어서
  • 최창민
  • 승인 2018.11.2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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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권(부산대 강사·행정학박사)
박창권

단체 카카오톡의 무차별성에 때때로 성가심을 받곤 한다. 오늘날 소통방식이니 이에 내성을 쌓는 것도 현대인의 덕목이리라. 나의 동창 단톡방은 시공에 구애 없이 요란할 때가 많다. 얼마 전 그 방에 우파 정치색이 짙은 영상물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면서 일이 불거졌다.

친구들 간에 이런 걸 왜 올리느냐는 핀잔과 설전이 오고갔다. 영상물을 올린 친구의 나라가 걱정되지 않느냐는 절규에 이어 네가 진정 좌파란 말이냐며 낭패감에 젖은 비탄을 보고 나머지 친구들은 그냥 침묵하고 말았다.

이제 단톡 방은 평정을 되찾았지만 영상물을 올렸던 친구의 상심이 자꾸만 내 마음을 짓누른다. 평소에 그 친구의 대인관계가 각별해서 더욱 그렇다. 그는 겉치레 인사가 아니라 상대방을 진실로 위로해주는 마음 씀씀이를 가지고 있다.

동창 소풍날에는 주문된 식당 반찬을 마다하고 자기 집에서 담가온 김치를 나눠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다. 주는 정이 묵직하면서도 섬세하다. 그가 가진 나라사랑 방식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나는 안다.

도대체 누가 이 순진 다정한 친구에게 좌우를 갈라놓는 철벽심을 심었을까? 위로차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린 시절에 각인된 반공 영상이 그의 뇌리에서 여전히 구동되고 있었다.

실상은 우리가 쓰고 있는 좌우는 한반도의 정치상황에 맞물려 지나치게 각색되어 왔던 측면이 있다. 크게 보면 좌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것이 정의의 시발점이고, 우는 기존 질서에 따른 공정한 자유경쟁을 최선의 덕목이라고 여긴다.

우는 그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있더라도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이 바로 잡아준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좌는 정부가 더 많은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인간 욕망이 투영되어 운동장이 기우는데, 욕망체계인 시장이 바로잡기는 어렵다고 본다.

엄밀히 보면 좌우가 반대편에 서있는 것은 아니다. 우의 반대는 좌가 아니라, 반동주의이다. 좌도 마찬가지이다. 좌우 택일을 강요해온 우리 현대사의 깊은 질곡에서 빨리 헤쳐 나와야 한다. 그리해서 좌우를 넘게 되면 새로운 기준은 무엇일까.

국제적으로는 우리의 국익이 우선이고, 내적으로는 사회적 약자의 관점에 서면 답이 보인다. 사회적 가치를 좌우 어느 쪽이든 독점하여 재단할 수는 없다. 얼마나 잘 나누고 함께 동참하느냐가 미래사회의 성공을 가늠한다. 좌우를 넘어 배려와 존중의 미덕이 살아있는 사회를 꿈꾸어 본다.

 

박창권(부산대 강사·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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