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냐고?
이게 나라냐고?
  • 경남일보
  • 승인 2018.11.2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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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권 (부산대 강사·행정학박사)
박창권

한 때, ‘이게 나라냐’는 구호에 많은 국민이 공감한 적이 있다. 이즈음에는 같은 일을 두고 보수 진보 양측에서 서로 이게 나라냐고 다그치고 있다. 정부의 기업정책이나 노동정책과 같은 사회경제문제가 시비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예컨대, 대기업의 일탈에 대한 정부조치를 두고 보수 쪽에서는 경제를 죽이려든다고 나라꼴을 탓하고, 진보 쪽에서는 처벌이 느슨하다고 온전한 나라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일전에 퇴계 가문을 방문하면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선비의 자세를 보고 왔다. 퇴계의 조부인 노송정 이계양 선생은 단종 원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봉화 훈도로 내려왔다. 곧이어 세조가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벼슬에서 물러나, 인근의 용두산 옆 봉우리에 단을 쌓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단종이 유배된 청령포를 향해 망제를 올렸다. 그는 도대체 무슨 상념을 안고 한여름의 뙤약볕도 엄동설한의 눈길도 마다않고 국망봉에 올랐을까. 어린 임금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면서 끓어오르는 충정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이로부터 500년이 더 지난 오늘날 대통령 탄핵과 이후의 국면을 보면서 노송정을 떠올리게 된다. 국정농단 관련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조사받고 진술하는 가운데, 그 누구도 내 책임이라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권력을 추종하며 그 핵심부에서 남을 단죄해왔던 그 누구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질 않았다. 나는 모른다. 나는 안했다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그 일이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올바른 자세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바탕은 책임정치이다. 벌어진 일은 있는데, 그 일을 한 사람은 없다고 하니 이게 나라냐는 것이다.

노송정은 봉화현의 정9품의 지방관직에 머물면서도 세조의 패도를 바로잡지 못함을 스스로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관직을 사직하고 폐위된 선왕께 사죄하면서 스스로 반성하는 삶을 살았다. 노송정과 같은 인물이 어디 한둘이던가. 사육신과 같은 충신이 있었기에 조선왕조는 500년을 넘게 버틸 수 있었다. 그 정신은 외침에서 나라를 지키고자하는 의병과 독립운동의 뿌리가 되었다.

현 정권도 머잖아 국정운영의 공과에 대한 시시비비가 있을 것이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위정자는 자기가 한 일을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책임행정의 시발이고 역사를 두려워하는 자세이다. 그리고 국가 경쟁력과 청렴도를 향상시키는 바탕이 된다. 노송정 정자에 걸린 옥루무괴(방안에 혼자 있어도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는다)에서 비장감을 느낀 것은 지나친 감상일까.

박창권 (부산대 강사·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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