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등재 씨름, 옛 영광 재현할까
유네스코 등재 씨름, 옛 영광 재현할까
  • 임명진
  • 승인 2018.11.2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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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덩치가 큰 덩치 꺾던 재미…부활 가능성 충분해

우리 전통 운동경기인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씨름은 지난 26일 아프리카 모리셔스에서 열린 제13회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 간 위원회에서 남북 공동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한때 씨름은 1980년대 프로팀들이 잇따라 창단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프로야구, 프로축구 심지어 해외스포츠에 밀려 점차 쇠락의 길을 밟았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한국 씨름판의 본류를 자부하는 경남씨름의 과거 영광과 현 주소, 그리고 가능성을 살펴본다.
 

▲ 1983년 제1회 천하장사 등극 후 짚차를 타고 모교인 경남대학교로 향하고 있는 이만기 장사. 경남일보 DB


이만기, 강호동 대형스타 등장에 인기 급상승 해

지난 1983년 4월 17일 서울의 장충체육관. 제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를 보기 위해 밀려드는 인파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TV와 라디오에서 씨름 중계를 편성했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에 지켜보는 시민들의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결승전 상대는 당시 강력한 우승후보인 최욱진 장사와 이만기 장사로 압축됐다.

당시 ‘모래판의 여우, 기술씨름의 달인’으로 통했던 최욱진 장사는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하나였다.

그와 상대하는 경남대 학생인 이만기는 무명에 가까웠지만 그 역시 우승후보로 거론된 홍현욱과 이준희 장사를 차례로 꺾고 생애 첫 우승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승부는 2-2 예측불허였다.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마지막 판에 나선 이만기가 호미걸이로 판을 따내며 극적으로 초대 장사에 올랐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새로운 스타 출현에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를 쏟아냈다.

당시는 씨름장마다 관중들이 가득 찼고,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방송사들이 씨름 중계를 앞 다퉈 편성했을 정도였다.

한 씨름 관계자는 “1980년대 당시만 해도 씨름은 경기만 열렸다 하면 구름관중이 모여들었다. IMF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프로팀들이 하나둘 해체되고 씨름의 인기도 추락했다”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이종격투기가 국내에 선을 보이면서 씨름의 인기는 더욱 하락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됐다고 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씨름의 부활과 지원 등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계기로 옛 영광을 재현하는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조정헌 경남씨름협회 전무이사는 “씨름인으로서 너무 기쁜 일이다. 이를 계기로 전 국민이 씨름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 번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효과는 대단할 것 같다”고 말했다.

 

▲ 현역시절 이기수가 상대선수를 눕히고 한라장사에 등극한 뒤 기쁨에 겨워 환호를 하고 있는 모습. 경남일보 DB



◇기술씨름 퇴조가 침체 불러와

청샅바와 홍샅바로 나눠 다양한 기술로 상대를 넘어뜨리는 씨름은 1980년대만 해도 10여 개에 달하는 프로팀이 창단되며 야구, 축구와 함께 국내 3대 인기스포츠의 한 축을 구축했다.

씨름의 흥행몰이는 기술씨름의 영향이 컸다.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이기는 게 씨름의 묘미. 화려한 기술로 덩치 큰 선수를 보기 좋게 넘어뜨릴 때 관중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모래판의 여우’, 최욱진은 뒤집기의 달인으로 통했다. 만 가지 기술을 가졌다는 이만기, 이승삼, 강호동 등 기술씨름은 그 전성기를 맞았다.

기술도 다양해 앞무릎치기, 오금당기기 등의 손기술과 안다리 걸기, 호미걸이 등의 발기술, 들배지기, 뒤집기 등의 다양한 기술은 씨름의 재미를 느끼게 했다.

이준희-홍현욱, 최욱진-이만기, 이준희-이봉걸, 강호동-이만기로 이어지는 라이벌 구도도 씨름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강호동이 이만기를 꺾고 새로운 천하장사에 등극한 지 4년 만에 은퇴를 하게 되자 씨름의 인기도 점차 하향추세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천하장사를 원했던 프로팀들은 보다 확실한 승리를 원했다.

모래판에는 서서히 거구의 선수들이 천하장사를 독식했고 일본의 스모선수 같은 육중한 몸매를 과시하는 선수가 넘쳐났다.

힘과 체중 일변도의 씨름은 기술씨름의 퇴조를 불러왔다.

샅바를 잡은 채 오로지 힘을 이용한 밀어치기와 상대의 공격을 되받아치는 지루한 경기가 반복됐다.

화려한 기술을 자랑하던 경량급의 선수들도 신장의 차이를 쉽사리 극복할 수 없었다.

씨름의 재미가 반감됐다. 체구가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이기는 단순한 경기에 매력이 떨어졌다.

관중들은 점차 등을 돌렸고 흥행가치가 떨어지자 기업들도 하나둘 씨름단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IMF위기가 찾아오자 팀 해단은 가속화됐다. 2000년대 들어 팀 해체로 일부 오갈 데 없어진 일부 선수들은 당시 이종격투기로 하나둘 진출하기도 했다.

 

▲ 이승삼은 현역시절 뒤집기에 능해 이름을 날렸다. 사진은 현역시절 뒤집기에 성공하는 장면. 경남일보 DB


◇경남씨름 침체 그러나 가능성 있다

숱한 스타급 선수를 배출하며 국내 씨름계를 이끌어온 경남씨름도 직격탄을 맞았다.

진주와 마산으로 대변하는 경남씨름계도 프로씨름단의 해체와 학교 씨름부의 쇠퇴로 좀체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진주씨름계는 양윤식, 이수영, 전재성, 차경만, 최욱진, 이기수, 김칠규, 김영현 등을 배출했고 마산씨름계는 권영식, 김성률, 이만기, 강호동 등의 장사들을 배출했다.

진주의 경우 남강변 백사장 씨름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기술씨름의 달인을 많이 배출했다.

경남씨름계는 많은 초·중·고, 대학, 일반부 씨름부가 전국대회를 석권하는 등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전국최초로 양산과 거제에서 여성씨름단이 창단되는 등 씨름 기반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진주남중과 경남정보고, 마산용마고, 경남대, 인제대 등의 전통의 명문 씨름단도 여전히 활동 중에 있다.

대한씨름협회에 등록된 전국의 초·중·고, 대학, 실업 씨름팀은 모두 229개 팀에 1595명이 씨름선수로 등록돼 있다.

경남지역에 등록된 선수는 대략 250여 명에 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초등학교의 경우 대회출전이 가능한 팀의 숫자가 5년 전 3, 4개 팀에서 지금은 15개 팀으로 크게 늘었다.

조 전무이사는 “전국대회 단체전에 출전할 팀이 없어 통합 팀으로 출전하는 등 애를 먹었는데, 올해부터는 학교별 단일팀으로 출전하고 있다. 경남은 유소년 팀의 기반 구축이 확실히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씨름이 다시 예전의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이만기나 강호동 같은 스타급 선수가 나타나야 한다. 또한 씨름인들 스스로 경기력 향상 방안을 계속 고민하고, 끌어 올리는 것이 향후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강조했다.


임명진기자


금강장사 9회 우승에 빛나는 구봉석장사가 현역시절 결승전에서 승리 후 환호하고 있다. 경남일보 DB

사천 줄신의 강광훈 장사가 한라장사에 등극한 뒤 시상식에서 꽃다발을 목에 걸고 밝게 웃고 있다. 경남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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