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를 안는 심정으로 썼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안는 심정으로 썼습니다”
  • 김귀현
  • 승인 2018.11.2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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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창작 오페라 ‘처사 남명’ 작곡가 최현석 씨

최현석(53) 작곡가는 지난해 11월 19일 남명 조식과 만났다. 경남도문예회관 개관 30주년 기획공연의 틀이 공개되던 시기였다. 창작 오페라 ‘처사 남명’의 시작이었다. 초겨울 시작된 작업은 지난 여름, 무덥던 7월까지 이어졌다. 최현석 작곡가는 수 개월간의 작업물을 30일부터 이틀간 처음으로 선보인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번 작품은 지역 관객에게는 깊은 마음으로 드리는 ‘선물’이자 스스로에게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품에 안아본 심정’으로 내놓는다.

최현석 씨는 “오페라 제작 소식을 접한 건 지난해였다. 지난 작품(‘선구자, 도산 안창호’)에서 연을 맺은 최강지 경상오페라단장의 작업 의뢰를 받았다”고 말했다. 남명 조식과의 연결 고리를 묻자 그는 “부끄럽지만 의뢰를 받은 당시만 해도 남명 선생에 대한 사전 지식이 거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백지 상태에서 시작했지만 그것이 더 촘촘히 고증하는 밑바탕이 됐다”고 자신했다.

남명을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던 그는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각종 문헌자료를 참고했다.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의 최석기 교수와의 만남, 남명 선생의 삶이 묻어있는 지역의 명소 방문도 그의 향기를 느끼기 위한 과정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곳은 천왕봉이 보이는 덕산의 산천재였다. 선생이 자신의 학문을 후학에게 전수하며 인생의 종장을 쓴 곳이다. 그는 “하나의 거대한 폭포를 본 것 같이 충격적이었다. 덕천강 역시 소박하나 아름다웠던 기억이 선명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최 씨는 “선생을 알아가며 가장 와닿았던 단어는 ‘처사’(處士)였다. 조직에 매어있게 되면 바른 말, 다른 말을 할 수 없다. 멀리 떠나야만, 내부에서 탈피한 상태가 돼야만 내부에 대한 평가가 가능하지 않나”면서 “사상이 깊게 침잠해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남명이 주창한 시대 정신이 결국 나라를 구했다는 것이 이번 오페라의 골자다”고 설명했다.

극 중 키워드를 잡자면 인물로는 남명 선생, 그를 멀리서 사모하는 여인 해정, 곽재우 장군이다. 중요한 아리아 중 두 개를 남명 선생의 이야기에 쓰고, 남명의 사상을 이어받아 의병으로 나섰던 곽재우 장군에게도 한 곡을 부여했다. 당시의 후대 뿐만 아니라 지금 후손인 우리가 남명 사상으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 시절의 정신이 유전돼 한국이 ‘격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더불어 다룬 인물이 있다면 가상의 인물인 해정과 실존 인물인 남명의 아들, 아홉 살에 명을 달리한 차산(次山)이다. 해정은 멀리서 선생을 사모하는 인물로, 차산은 극 중 3차례 영혼처럼 등장해 극 중 일종의 프레이즈를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최 씨는 “무게를 둔 부분이 있다면 선생의 을묘사직서와 더불어 기묘사화와 그 이후를 그려낸 아리아다. 선생의 장례 때 해정이 부르는 탄식의 데스칸트(Decant·가장 높은 음역)도 되겠다. 피날레로는 임진왜란 승리의 대합창이 터진다. 그의 일대기를 과장 없이, 그러나 웅장히 담아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공연 시간은 100분 가량이다. 너무 긴 시간 극을 끌다보면 관객의 시선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최현석 작곡가는 남명의 사상과 그의 역동성이 긴 러닝타임에 흐려질까 걱정했다. 역사적으로 고증에 충실하되 ‘다큐멘터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인물의 ‘사상’을 잃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공연 중에는 남명의 경의 사상을 관객과 함께 외치는 대목이 있다. 최현석 씨는 “누구나 ‘내명자경 외단자의’(內明者敬 外斷者義·‘안으로 자신을 밝히는 것은 경이요, 밖으로 과감히 결단하는 것은 의라고 한다’) 하나만은 암기하고 갈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작곡가는 작품으로 관객, 극을 만들어가는 모두와 이야기하고자 했다. 최현석 작곡가는 “한국적인 정서로 세계성 띄는 오페라를 그린다. 우리의 정서, 전통적 선율을 많이 넣었다. 다만 관객이 듣고 봤을 때 ‘저건 국악이야’라는 단순한 인상은 남기고 싶지 않다. 한국적인 색채가 여운으로 남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역의 인물을 소재로, 지역에서 최초로 만들어지는 오페라를 지역민들이 애정어린 눈으로 봐주길 청했다.

최 씨는 “최대한 관객이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겼다”면서도 냉철하게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작품, 이 콘텐츠가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방향까지 내다보고자 했다. 지역민에게 사랑받아 지역 콘텐츠의 수명이 오래 이어지길 바란다. 이제 작품은 내 품을 떠났다”고 덧붙였다.

김귀현기자 k2@gnnews.co.kr



 
최현석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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