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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82>외씨버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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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03  15: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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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숲길 초입에 선 외씨버선길 안내 조형물.




◇외씨버선길

경북의 청송, 영양, 봉화, 강원도의 영월까지 4개군으로 이어진 200㎞의 힐링길인 외씨버선길, 이어진 길의 모양이 외씨버선을 닮았다고 해서 외씨버선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경북 영양이 고향인 조지훈 시인의 시 ‘승무’에 나오는 외씨버선, 참외씨같이 뾰족하고 맵시 있는 버선처럼 아름다운 길인 외씨버선길은 총 13개 구간으로 되어 있는데 필자가 걸은 7구간 길은 8.3㎞ 정도 된다. 그리고 이 7구간 길을 ‘치유의 길’이라고도 하는데 아름다운 숲길로 된 이 길을 걸어가기만 해도 몸과 마음의 병을 깨끗하게 치유할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외씨버선길 7구간인 ‘치유의 길’에서 단풍든 가을처럼 중년을 아름답게 채색하기 위해 국민체력센터(원장 이준기) 명품 걷기 클럽인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트레킹을 떠났다.

진주에서 출발해서 4시간 가까이 달려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용화리에 있는 일월산자생화공원에 도착했다. 자생화공원 입구에 조지훈 시인의 시 ‘승무’를 새겨놓은 큼직한 시비가 맨 먼저 탐방객들을 맞이해 주었다. 자생화공원이라지만 꽃들은 거의 다 지고 구절초와 쑥부쟁이, 단풍든 따사로운 가을햇살만이 공원을 지키고 있었다. 공원 뒤켠에 있는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은 일제시대 만든 일월용화광산 선광장이다. 일월산에서 채굴한 광석을 이곳 선광장으로 운반해서 유용광물인 금, 은, 동, 납, 아연 등을 가려내는 곳이었는데, 해방 후 1994년 폐광 직전까지 계속 채광을 해서 지역사회와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한 광산이라고 안내판에 표기되어 있었다. 광물을 선별할 때 쓴 독성물질로 인해 식물이 자라지 못하고 하천이 오염되었던 지나간 아픔을 역사 속에 묻어버리고 이곳에다 자생화공원을 조성한 것은 외씨버선길 7구간인 ‘치유의 길’과 그 뜻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화공원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본격적으로 외씨버선길 트레킹을 시작했다.

 
   
▲ 자생화공원에 세워놓은 승무 시비.


◇치유의 길

국도를 따라 300m 정도 가다가 용화마을에서 안내판의 지시대로 계곡 쪽으로 난 외씨버선길로 접어들었다. 마을과 계곡, 언덕길과 논밭 모두가 너무나 서정적이었다. 반변천에 놓인 무아교와 곧게 뻗은 소나무숲길, 숲속 황토로 만든 민박집이 길의 품격을 높여주었다. 아름다운 숲길이 시작되는 대티골 입구로 가기 위해 반변천을 따라 올라갔다. 골짜기 옆 제법 널찍한 밭에는 고랭지 배추가 김장철을 기다리고 있고, 작은 밭에는 끝물고추가 가을단풍처럼 익어가고 있었다. 마침 고추밭에서 일하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필자 일행들에게 고추를 따 가라고 하신다. 고추 대신 인심만 받아가겠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2㎞ 정도 걸어가자 대티골 마을 초입에 있는 아름다운 숲길인 ‘치유의 길’에 닿았다. 아름다운 숲길 입구에는 돌을 쌓아서 조성한 외씨버선길 조형물이 있었다. 포토존으로 탐방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곳이다.

이 ‘치유의 길’은 일제강점기 때 영양의 일월산에 있는 광산에서 캐낸 광물을 일본으로 가져가지 위해 이곳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닦은 길이다. 해방 뒤에는 벌목한 나무를 옮기는 임도로 이용하다 그 뒤 새 국도가 생기면서 방치해 뒀는데, 최근 대티골 주민들이 다시 복원을 해서 치유의 길로 재탄생했다고 한다. 길 중간에 ‘영양 28㎞’라는 낡은 이정표가 ‘치유의 길’이 국도였음을 알려준다. 수탈과 훼손의 아픈 역사를 극복하고 지금처럼 치유와 행복의 길로 거듭난 아름다운 숲길인 ‘치유의 길’에 마을 주민들의 정성과 노력이 보태어져 대티골 숲길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숲길부문 어울림상을 받기도 했다.

걷기에 딱 좋은 길이다. 처음엔 소나무숲길이었지만 조금 나아가자, 강원도에서 동백나무라 불리는 생강나무와 붉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개옻나무가 가을옷을 갈아입고 탐방객들을 맞이해 주었다.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세상 앞에서 탐방객들은 탄성과 함께 사진 속에 풍경을 담느라 넋을 놓기도 했다. 어쩌면 이 순간만큼은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시간이다. 과거의 상처나 아픔, 근심걱정 모두 잊고 치유와 행복으로 가득 채운 지금 이 순간, 탐방객들 모두가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가을을 건너가는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치유의 길 중간쯤에는 탐방객들이 쉬어가라고 원두막처럼 지어놓은 쉼터도 있었다. 칡밭목삼거리를 지나 옛이정표에서 봉화군 우련전까지 이어지는 숲길은 포장도로였지만 길가에 즐비한 소나무와 전나무가 발품의 피로를 덜어 주었다.

당나라의 시인 두목의 시 ‘산행’에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 서리맞은 단풍잎이 이월 봄꽃보다 붉구나)하는 구절이 있다. 치유의 길 중간 쉼터에서 바라본 일월산의 풍경과 단풍든 가을 숲길의 아름다움을 절묘하게 잘 표현한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풍으로 곱게 채색된 가을산을 본 사람은 봄꽃만큼이나 가을 단풍도 아름답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봄꽃과 가을 단풍 중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운가?’는 어쩌면 어리석은 질문일지도 모른다. 꽃은 꽃대로 단풍은 단풍대로 아름답다. 우리 인간도 젊음은 젊음대로, 중년은 중년대로 멋이 있다. 그런데 가을인 중년이 봄인 젊음만 닮으려 하는 행태가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있다. 가을이 가을대로 아름다움이 있듯, 중년 또한 중년대로 멋이 있다. 가을 단풍처럼 중년의 인생을 아름답게 채색해 나가는 것은 중년들의 몫이다.

 
   
▲ 치유의 길 중간쯤에 마련된 쉼터.


◇중년의 길

젊은이들한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삶의 여유와 철학, 교양과 지성을 독서나 여행 등을 통해 중년을 가꾸어 간다면 젊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중년의 멋과 향기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지금 필자가 걷고 있는 이 ‘치유의 길’에서 만난 가을산이 바로 중년의 멋을 그대로 펼쳐놓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니, 함께 한 중년들이 걷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멋과 향기가 느껴졌다.

치유를 위한 걷기는 속도가 아니라 각도다. 중년의 다양한 시각과 여유로운 삶을 통해 인생을 더욱 아름답게 채색해 보는 것도 이 가을을 행복하게 건너는 길이라 생각한다.

/박종현(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고랭지 배추밭과 단풍든 가을산.
   
광석 선광장인 일월 용화광산.
   
소나무 숲길로 난 외씨버선길.
   
깊은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 치유의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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