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투지로 가을 성(城)을 지키려 했으나
물밀듯 쳐들어온 한파에 모조리 전멸이옵니다.
하룻밤 비바람에 장렬히 전사한
저들을 통촉하여주시옵소서!
-강옥
본디 생성과 소멸은 인과관계다. 봄이 오면 뒤따라 가을이 오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이라 이들은 늘 상호관계다. 겨울의 문턱에서 붉은 단풍의 낙하 장면을 목격한 시인은 전사한 장병들을 떠올리며 전멸한 전장을 표출한다. 나아가 자연의 질서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부디 통촉해 달라는 해학이 독자로 하여금 바짝 다가가게 만든다.
바람이 불고 그러다 눈 내리는 날이면 저들끼리 합류하여 또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게 분명한데, 우리는 왜 떠나는 발자국을 오랫동안 지켜보게 되는 걸까. 마지막 단풍이 지고 있다. 수면 위로, 빈 가지 위로, 저 만치 허공으로 휘날리며 저들은 끝끝내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안다. 그리 멀지 않은 곳 어디쯤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봄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 봄은 온다.
/ 시와경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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