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전멸
[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전멸
  • 경남일보
  • 승인 2018.12.05 16: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디카시-전멸



불타는 투지로 가을 성(城)을 지키려 했으나

물밀듯 쳐들어온 한파에 모조리 전멸이옵니다.

하룻밤 비바람에 장렬히 전사한

저들을 통촉하여주시옵소서!

-강옥



본디 생성과 소멸은 인과관계다. 봄이 오면 뒤따라 가을이 오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이라 이들은 늘 상호관계다. 겨울의 문턱에서 붉은 단풍의 낙하 장면을 목격한 시인은 전사한 장병들을 떠올리며 전멸한 전장을 표출한다. 나아가 자연의 질서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부디 통촉해 달라는 해학이 독자로 하여금 바짝 다가가게 만든다.

바람이 불고 그러다 눈 내리는 날이면 저들끼리 합류하여 또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게 분명한데, 우리는 왜 떠나는 발자국을 오랫동안 지켜보게 되는 걸까. 마지막 단풍이 지고 있다. 수면 위로, 빈 가지 위로, 저 만치 허공으로 휘날리며 저들은 끝끝내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안다. 그리 멀지 않은 곳 어디쯤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봄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 봄은 온다.

 

/ 시와경계 편집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