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묘비명을 써 놓고 정치를 하면 어떨까?
[경일포럼]묘비명을 써 놓고 정치를 하면 어떨까?
  • 경남일보
  • 승인 2018.12.0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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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위(칼럼니스트)
묘비명은 원래 묘 앞에 세워 놓는 비석에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친지들이 그의 행적을 새겨 넣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영국의 극작가인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써 놓고 죽었다니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기이한 행적중의 하나라고 할 것이다. 그가 써 놓은 비명은 이렇다. “내가 어영비영 살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그를 깊이 연구 해 본 적은 없지만 극작가요 소설가요 비평가로서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내력을 바탕으로 이 비문을 보면 섬광처럼 번뜩이는 재치가 철철 넘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아무런 업적도 남겨 놓은 것이 없다고 겸손해 하고 있다. 위대한 한 작가의 해학적인 푸념으로도 읽혀지지만 천상병의 ‘귀천’과 같은 시정신도 깃들여 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이 세상 소풍을 끝냈으니 이제는 하늘로 돌아갈 날밖에는 남지 않았다는 자족감도 슬며시 느껴지는 묘비명이 아닌가 싶다.

사람이 죽을 때에는 누구나 순수해진다고 한다. 일본을 통일하고 난 이후 임진왜란을 일으키면서 까지 천하를 손에 쥐고자 했던 히데요시(풍신수길)도 죽을 때에는 이런 시를 읊었다고 한다.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오사카의 영화여, 꿈속의 꿈이로다.”

일본 오사카 성을 구경해 본 사람은 안다. 몇 십리 밖에서 보아도 화려하기 그지없는 오사카성을 그대로 둔 채로 죽으려니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그러나 그는 그 억울함 보다는 오사카의 영화도 결국은 꿈속의 꿈인 것을 절감하면서 죽어 갔다. 오다 노부나가의 마부로 시작하여 사분오열의 일본을 통일시킨 업적도, 조선침략의 야심도 꿈속의 꿈으로만 여겨질 뿐이었을 것이다.

남극탐험에서 아문젠에게 그 성공의 기회를 노친 영국의 탐험대가 기진맥진하여 되돌아오는 길에 대원중의 한명인 오츠(Oates)라는 사람은 그의 32번째 생일을 하루 앞두고 “잠간 나갔다 오겠소!”라고 하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천막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몸이 얼어 죽을 지경이 되자 다른 대원들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눈보라 치는 폭풍 속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죽음 속으로 걸어 나가면서 남긴 한 마디가 그렇게도 담백할 수가 없다.

그가 죽으려고 천막 밖으로 나간 것을 알고 있는 이 탐험대의 대장 스코트도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앞에서 이런 최후의 일기를 남겨 놓았다. “신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신이야 있건 없건, 신을 믿건 믿지 않건 누구에게나 죽음의 순간에는 신을 찾는 것이 보편적 현상이 아닌가 싶다. 이런 것을 보면 인간은 신을 믿지 않아도 신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면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8개의 발가락은 모두 동상으로 잘려 나가고 남은 발가락 2개로 북극점에 오른 피어리는 또 이렇게 외쳤다. “침묵의 여왕이여! 정복됨을 슬퍼 말라 북극이여! 나와 함께 눈물을 흘려 다오!” 얼마나 감격스러웠으면 자신과 함께 눈물 흘려주기를 그 토록이나 애타게 호소했을까?

그래서 생각해본다. 버나드 쇼처럼 미리 자기의 묘비명을 짓고 또 이를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죽어서는 자연스럽게 묘비명으로 남을 것이고 살아서는 그 묘비명이 헛되지 않도록 알차고도 보람된 삶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특히 정치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모든 정치인이 그럴 수만 있다면 세상은 한결 더 밝은 세상이 될 것같다. 연말의 단상이다.
 
김중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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