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꿈
시인의 꿈
  • 경남일보
  • 승인 2018.12.1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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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남(시인·논술강사)
정진남

‘내 이야기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는 아이의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의 ‘내 친구 이야기와 같아 공감할 수 있었다’며 부쳐 온 편지, ‘시를 읽으면서 반성이 되어 눈물을 흘렸다’ 혹은 ‘재미 있었다’는 초등학생 아이를 둔 주부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할머니 한 분은 딸에게 보여 주고 싶다고 시집을 한 권 더 달라 하였다. 남자들의 반응은 여자들과 사뭇 달랐다. 여자가 아이 낳고 기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쉬운 일로만 알았는데, ‘성규의 집’을 읽고 이렇게 어렵고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칠십 평생 처음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중앙시조대상에 빛나는 최영효 시인은 ‘성규 장가갈 때 꼭 연락하라’고 축하해 주었다. 문단의 대선배 동화작가 정현수 선생님은 찻집에서 만나 금일봉을 주시며 격려해 주셨다.

지난해 출간된 시집 ‘성규의 집’을 읽은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 속에 붕 날고 있던 찰나, 내 시가 사람들을 얼마간 붕 날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시인인가에 대해 의문이 싹트기 시작한 지점을 만난 것도 이 즈음이다. 루이스 세뿔베다의 책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에서 고양이들은 아기 갈매기를 구하기 위해 시인을 선택한다. ‘그의 시를 들을 때마다 항상 즐거웠고, 계속해서 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시구를 타고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인은 지체하지 않고 당장 갈매기를 날려 보내는 일을 시작하는 바람에 고양이들도 놀란다. 그 고양이들이 어떤 고양이들 인가. 갈매기를 잡아먹기는 커녕 알을 이십일 동안 감싸 안고 있다가 부화시킨 장본인들이다. 먹고 화장실 가는 것도 잊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알을 까고 나온 어린 갈매기에게 밥을 주며 길렀고, 날려 보내기 위해 무진 애를 쓴 주인공들이다. 이들을 놀라게 한 사람이 바로 시인인 것이다.

‘성규의 집’을 출간할 즈음 이 책을 읽었다. 진정한 시인이 되고 싶은 나는 고양이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그해 겨울, 주차장 내 자동차 바퀴 옆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고양이가 걱정되어 시동을 끄고 내렸을 때, 이미 멀찍이 떨어져 앉아서 나를 보고 있던 고양이. 가만히 귀 기울이면 먼지를 희부옇게 뒤집어 쓴 고양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너 내가 걱정되었나보구나, 뒤늦게 철들었군.’ 고양이가 껄껄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좀 더 일찍 철이 들었더라면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정진남(시인·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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