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미워하는 마음, 그 기회비용의 손실
[경일시론]미워하는 마음, 그 기회비용의 손실
  • 경남일보
  • 승인 2018.12.1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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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재(객원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회장)
무역규모 등 세계 10위권 경제강국, 한국에서 가장 잘 사는 기초자치단체 중 하나인 서울의 강남구 일대 거리 모습에 확 바뀐 게 하나있다. 큰 길의 자동차도로는 물론, 작은 골목까지 촘촘히 걸려있던 태극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국경일과 평일, 낮과 밤을 불문하고 가로등이나 전봇대에 어김없이 나부낀 대한민국 국기말이다. 지금은 일체 없다. 심지어 공사장 가림막에도 태극기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대한민국 주인은 나, 내가 아니면 누가 달겠어요’ 라는 문구와 함께. 현재는 태극기 그림을 민무늬 덧칠로, 혹은 다른 도안으로 가려 놓아 흉물이 되었다. 지난 6월의 지방선거이후 다른 정당출신의 구청장 취임이래 바뀐 것이다. 새 구청장의 알려진 훌륭한 인품으로 ‘철거하라’는 지시는 없었겠지만 그 많던 태극기는 없어졌다. 다른 지역과 달리 유별나게 태극기 게양이 많았던 것도 이상한 일이요, 굳이 떼어 낸다고 남은 공기(工期)와 무관하게 공사장 가림막까지 일거에 바꾸는 일도 범상한 일은 아니다.

바라보는 주민의 생각은 어떨까? 지자체장의 생각, 그가 소속한 정당 이념에 따라 국기가 친근했다가 급작스럽게 이단(異端)이 되었다. 단체장을 뽑는 선택방식은 자신의 생각과 이념을 대비시켜 인물과 정당을 고려하여 투표한다. 태극기게양이 긍정적 정책의 일환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전자에 동조하는 사람도 있고, 후자에 방점을 두는 주민도 있을 것이다. 극명하게 바뀐 일에 대해서는 명징한 반향이 따른다. 반대편에 선 상대는 미워하는 마음이 생긴다. 적대적 감정까지 다다른다. 드러난 일에 상대의 생각과 입장을 고려하는데 인색하다고 느끼면 상대의 사소한 실수나 잘못에 대해 커다란 반발심을 갖게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 같은 행동을 유도 혹은 조장한다. 사회심리학, 행동확증(behavioral confirmation)의 한 전형적 단면이다.

비단 강남구만의 일이 아니다. 같은 세상을 사는 상대에게 적대감정을 발원시키는 현상이 너무 많아 걱정이다. 전임자가 주도한 수많은 정책을 괴물로 전락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골칫덩어리로 변질시켜 뭉개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촛불’에 ‘태극기’가 등장하여 서로 폄하하고 질시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도(人道)차원의 대 북한 접촉도 불경죄로 여겨질 정도에서, 사형만이 징벌인 여적죄(與賊罪)가 될 광화문거리와 지상파방송에서의 ‘김정은 찬양’이 문제도 안된다. 북한정권을 비난해야 출연이 가능했던 방송프로그램에, 그것을 칭송하거나 고무시켜야 고정 손님이 된다. 정부의 모든 부처, 소속 및 산하기관에서는 대북관련 사업을 만드는데 혈안이다. 대북정책 주무부서인 통일부는 말 할 것도 없다. 블랙리스트가 생겼고, 곧바로 화이트리스트가 불거졌다. 적폐 단죄가 대척점의 또 다른 적폐세력을 만든다. 조직의 질서와 관행이 불법이 되고, 직권남용과 직무유기가 작위적이다. 그 반대도 권력지형에 따라 뒤집힌다. 상대의 적개심을 불러들이면서 말이다. 지금과 그 이전의 경우도 도긴개긴이다.

지방과 국가를 불문하고, 집권자 입장에서는 각각의 정해진 짧은 임기로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란 말도 충분히 교훈이 된다. 그러나 불멸할 사회공동체, 나라 일에 상대가 지닐 미워하는 마음을 달래며 차근히 가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냉소와 불협화음에 대한 무한대의 기회비용을 상정하면 그렇다. 얼마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고 타계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정적이면서 후임자였던 빌 클린턴에게 남긴 손 편지, “그대의 성공이 바로 나라의 성공, 그대를 굳건히 지지하겠다”는 메시지가 우리의 현실을 너무 초라하게 만든다. 조포(粗暴)는 조포를 낳는다. 필연이다.
 
정승재(객원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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