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山은 산이로되
[경일칼럼]山은 산이로되
  • 경남일보
  • 승인 2018.12.0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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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추사 유배지 주차장에 도착했다. 검고 송알송알 구멍이 난 현무암으로 사람 키보다 높게 쌓은 담을 따라 가다보니 안내판이 있다.

추사 김정희는 헌종 6년(1840) 55세 되던 해, 제주도로 유배되어 헌종 14년까지 머물렀다. 유배 초기에는 포교 송계순 집에 머물다가 강도순 집으로 거처를 옮겼고, 제주지방 유생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쳤으며 차를 즐겨 마셨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를 비롯하여 많은 서화를 남겼다. 집터만 남아 경작지로 이용되다가 추사 유배지로 복원하였다.

지하에 추사관이 있다. 입구부터 추사 일대기를 펼쳤다. 1786년 태어나 24세 동지겸사은부사 부친을 수행하여 청나라에 가고, 31세에 북한산순수비를 확인, 44세에 평양 고구려 석각 발견, 금석학 고증학 서예 회화 등에 우뚝 봉우리가 되고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2개의 무량수각(无量壽閣) 편액이 나란히 걸렸다.

우측은 추사가 제주 유배가다 해남 대둔사에 들러 써주었다는 현판의 탁본이다. 글씨를 써주며 초의선사에게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이라는 현판을 떼어내도록 했다. 세월이 흘러 제주 유배가 풀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초의선사 보고 자신의 현판을 떼고, 이광사의 현판을 걸도록 했다고 한다. 좌측은 추사가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인 1846년 충남 예산 화암사 중창에 맞춰 써 보낸 현판의 탁본이다. 대둔사 무량수각은 획이 묵직하고 두툼하여 간극이 가느다란 선으로 나뉘어 있는 모습에 철근콘크리트 건물, 화암사의 무량수각은 단아하고 명료함이 느껴지며 글자마다 특성을 주어 조선집 곳간을 넘겨다보는 듯하다.

해설사가 특별한 글씨라고 호기심을 자극한 후 설명하는데 만덕산 다산 초당에 걸려있는 ‘다산 정약용을 보배롭게 생각하는 산방’이라는 보정산방(寶丁山房)의 탁본이다. 널빤지에 가로 글씨로 ‘보’와 ‘방’은 크기가 거의 같고 山은 다른 글자의 반이며 위로 맞추어 아래는 여백으로 남겨 공중에 떠있는 형상이다. 초의선사에게 써준 무량수각 보다 선이 가늘어졌다. 유난히 无와 丁의 마지막 획이 비교 된다. 无은 우로 돌려 삐쳐 올렸는데 획이 굵어 지면이 좁아 각이 졌고,丁은 날렵하게 원형에 가깝게 감아 올렸다.

해설사는 설명을 끝내고 일행을 둘러보더니 질문을 던진다. “네 글자 중에 어떤 글자가 특이한가?”하는데 대부분이 “마무리에 멋을 부린 丁이다”라고 하자 고개를 가로 저으며, 지형과 관계있다며 즉답을 피하였다. 너무 궁금하여 힌트를 달라고 했더니 산에서 찾아보라고 한다. 추사관을 나와 살피는데 길 건너 자연석 하얀 돌을 세우고 그림을 새겼다. 삿갓을 쓰고 나막신을 신은 채, 도포를 걷어 올리고 진흙탕을 걸어가는 모습으로 소치 허련이 그린 스승 추사의 초상이다. 그림 너머로 산을 바라보자 가운데 봉우리가 옆 봉우리 보다 낮다. 山은 봉우리가 뾰족뾰족하게 이어지는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로 가운데 봉우리가 높고 주변 봉우리는 낮아 첫 획을 길게 긋는 山으로 자림 매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寶丁山房에서 山의 세 획 높이가 같다. 이는 추사가 유배생활에서 온갖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고 자연에 동화되어 산을 있는 그대로 보았고, 제주에서 이글을 써서 보낸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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