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플러스 <210>홍성 용봉산
명산플러스 <210>홍성 용봉산
  • 최창민
  • 승인 2018.12.1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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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풍바위


용봉산(龍鳳山·381m)은 평야의 언저리에 솟은 산으로 전체가 기암괴석의 바위로 돼 있다. 산릉에 병풍바위를 비롯해 용바위, 사자바위, 거북바위, 두꺼비바위, 행운바위, 삽살개바위, 의자바위, 촛대바위, 월드컵바위 등 기묘한 바위들이 즐비하다. 실로 작은 산에 이렇게 다양한 이름을 가진 곳이 있는 가 싶다. 또 바위의 갈라진 틈이나 기암절리 곳곳에는 분재처럼 특이한 초록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화강암과 소나무의 어울림은 그냥 멋스러운 것이 아니라 기품까지 더해 옛 명사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 이름을 ‘용의 몸에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는 뜻으로 용봉(龍鳳)이라고 불렀다. 요즘 사람들은 홍성의 진산, 충남의 금강산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빼어난 지형을 보여주는 것은 이 지역이 수암산(260m)과 함께 평야에 불쑥 솟아 있는 고립된 구릉이기 때문이다. 심층에서 풍화작용에 의해 만들어져 솟구친 탑 모양의 암탑(岩塔·토어), 바위기둥, 애추 바위봉우리 등 특이한 미지형(微地形·작은 굴곡)이 나타난다. 이러한 미지형은 하나로 합해지고 서로 어울리면서 그림 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최근 이곳에 내포신도시가 들어서고 충남도청이 옮겨오면서 산행객이 많이 유입돼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지난 가을에는 홍성군 주최로 제1회 전국 등반대회도 열리기도 했다. 지자체에서는 안전시설을 설치하고 이정표를 세우는 등 등산로를 말끔히 정비해 놓았다.

조망은 동쪽에 내포 신도시와 충남의 곳간 드넓은 평야, 서북쪽에 수덕사를 품은 덕숭산이 가깝게 보인다.

 
▲ 병풍바위 상부


▲등산로; 용봉사→병풍바위 하부갈림길→병풍바위 상부→암릉→내포신도시 갈림길→수암산 갈림길→용바위→악귀봉→노적봉→최영장군 활터→용봉산 정상→반환→자연휴양림.
 
 


▲용봉산은 충남 홍성군 홍북면과 예산군 덕산면·삽교읍에 걸쳐있다. 용봉산자연휴양림을 통해 용봉사까지 차량운행이 가능하다. 휴양림은 1991년 5월 개장했다. 1일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중급 규모로 산림휴양관, 숲속의 집, 산림전시관, 산림욕장, 낙조대 등이 있다. 이 산에 사는 홍단딱정벌레, 벚나무사향하늘소, 홍다리노린재, 장수풍뎅이, 검정물방개, 단물땡땡이 등 곤충표본이 전시돼 있다.
▲ 고즈넉한 용봉사,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주고 용봉사까지 차량으로 갈수 있다. 매표소 지나 10m지점에 오른쪽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은 용봉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병풍바위로 올라간다.

취재팀은 용봉사로 바로 올라갔다. 이 절은 애환이 있었다. 원래 위쪽에 있었으나 그곳에 묘를 쓰겠다는 사람들에의해 밀려 내려와 1906년 지금 위치에 섰다. 옛터에 백제 와편이 출토돼 그 이전에 지은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조선 숙종 때 제작된 ‘영산회괘불탱화’(보물 1262호)가 보관돼 있다. 절 오른쪽으로 5분정도 오르면 병풍바위 하부다. 가까이 다가가면 위압감이 느껴진다. 오른쪽으로 돌아 상부로 올라갈 수 있다.

상부에서 전망은 단연 정상쪽이다. 이름 없는 웅장한 암봉을 거쳐 왼쪽으로 용바위, 더 왼쪽으로 크고 작은 암봉의 실루엣이 파도처럼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인구 10만을 꿈꾸는 내포 신도시. 너른 들판에 대단지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제법 멋을 낸 아파트도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도긴개긴 성냥갑처럼 보인다. 지금은 충남도청이 옮겨오면서 약 2만5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인구가 차츰 늘고 있는 추세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내포(內浦)는 좋은 곳’이라고 돼 있다. 야트막한 산, 기름지고 드넓은 평야가 있어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의미다.

길을 재촉하면 정면에 초록색의 솔숲, 그 사이로 베이지색 마사토길이 살짝살짝 보인다. 화려한 꽃무늬가 들어 있는 비단 융단이 이보다 아름다울까.

오름길의 끝에 서면 갈림길. 오른쪽은 이 산과 연결된 수암산으로 가는 길이다. 곧 용머리처럼 돌출돼 있는 용바위 옆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간다. 그 상부에 ‘왜 충남의 금강산이냐’는 물음의 답이 있다.
▲ 노적봉에서 바라본 악귀봉

이 산 최고의 절경 악귀봉이 반긴다. 노적봉까지 물개를 닮은 바위, 손가락을 닮은 바위 솟대바위 등 집채만 한 바위서부터 작은 바위까지 서로 뒤엉켜 웅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고도를 높이면 걸출한 바위능선이 계속된다. 그 길을 따라 바위틈을 지나올라 다리를 건너간다.

솟대바위 다음은 노적봉이다. 산 아래에서 올라온 아주머니 한분이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다.

최영 장군 활터갈림길을 지난다. 왼쪽 내포신도시 방향에 보이는 팔각정자가 그의 활터이다. 고려 말 충신 최영(崔瑩·1316~1388)은 유년에 이곳에서 활을 쏘며 무술을 연마했다. 훗날 우왕 시절 최고의 권력을 누렸지만 위화도 회군을 감행한 이성계에 맞섰다가 귀양을 간 뒤 개경으로 압송돼 참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인근 홍북면 노은리가 그의 생가지다. 이성계는 4년 후 조선을 열었다.

그가 실천하고 남긴 금과옥조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지금도 들어맞는 교훈이다.

최영장군이 내포를 향해 쏜 화살이 얼마나 날아갔는지 알 수 없다. 이곳에서 말이 빠른지 화살이 빠른지 내기를 했다는 전설도 있다. 문득 최근 개봉한 영화, 당 태종을 향한 고구려의 자존심 ‘안시성’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용봉산 정상이다. 탑처럼 쌓여 있는 자연석 꼭대기에 정상 표시석을 얹어놓았다.
▲ 용봉산 정상석

되돌아보면 노적봉 악귀봉과 용바위 수암산 덕숭산, 가야산이 차례대로 보인다. 옹골찬 바위봉우리가 수려하거나 기묘하거나 그 영화 속을 걸어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 시절 다산(茶山·1762~1836)이 용봉산을 찾았다. 강진 등 서쪽지방에 에 머물렀던 그는 평소 지리산이나 설악산 금강산과 같이 명산이 없음을 아쉬워했었던 모양이다.

/서해의 지역이라 명산은 적고/ 기름진 넓은 들만 깔리었는데/ 뜻밖에도 본질을 탈바꿈하여/ 머리 빗고 몸 씻어 평지에 나와/ 뭇 봉우리 드높이 솟아오르니/ 가팔라 투박한 살 털어버렸네/ 그는 용봉산의 아름다움에 반해 과용봉사(過龍鳳寺·용봉사에 들러)라는 시를 남겼다.

취재팀은 이곳에서 반환해 일부는 차량회수를 위해 용봉사로 향했고 일부는 자연휴양림으로 바로 내려갔다. 용봉사로 바로 가는 길은 산허리를 가로질러 간다.

일주문을 지나면 왼쪽 언덕 암벽 면에 마애불입상(충남 유형문화재 제11호)이 보인다. 높이 210cm짜리 통일신라 작품이다. 머리는 선명하게 조각했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연한 부조형태로 바뀐다. 불상 오른쪽 명문에 ‘정원 15년’ 이란 글로 799년 신라 소성왕 초기 작품인 것을 알 수 있다. 9세기 불상 양식의 시작을 알려주는 좋은 예로 평가 받는다고 한다. 마애불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모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최창민기자

 
물개바위와 멀리 내포 신도시 모습
악귀봉의 실루엣, 소나무와 사람들이 어울려 한폭의 수묵화를 연상케한다.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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