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식의 건강이야기] 술이 술이 마술(魔術)이…
[김현식의 건강이야기] 술이 술이 마술(魔術)이…
  • 경남일보
  • 승인 2018.12.1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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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세란병원 진료부장 내과 전문의
숨 가쁘게 달려온 2018년도가 저물고 있다. 묵은해의 아쉬움을 달래며 다가올 새해의 희망을 품고 여러 곳에서 연말연시 모임이 준비되고 있다. 모임의 친목과 흥을 돋우기 위하여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다름 아닌 술일 것이다.

술은 인간사 희노애락의 모든 자리와 항상 함께 해 왔으며 죽음 이후 제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또한 술은 서먹한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제 역할을 하고 회사나 단체의 구성원들 간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기능도 한다. 이러한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종종 과도한 음주는 여러 가지 문제를 초래하여 만인의 지탄을 받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음주를 즐기는 문화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대대로 우리민족은 유난히 음주와 가무를 즐긴 듯하다. 중국 송(宋)나라의 후한서에는 ‘동이(東夷) 족은 모두 토착민으로서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기를 좋아한다’고 전한다. 1920년에 발간된 ‘세계 알코올 대사전’에도 한국인의 음주 태도를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음주행위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고 적고 있다. 신라시대의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중 하나인 14각 면 형태의 주사위 놀이기구인 주령구(酒令具) 의 음주와 연관된 사자성어의 벌칙중 일부를 전하면 ‘삼잔일거(三盞一去)’ 한꺼번에 세잔 마시기 , ‘양잔즉방(兩盞則放)’ 두 잔 있으면 즉시 비우기, ‘자창자음(自唱自飮)’ 혼자 노래 부르고 혼자 마시기, ‘음진대소(飮盡大笑)’ 받은 잔 다 마시고 크게 웃기, ‘곡비즉진(曲臂則盡)’ 팔을 구부려 다 마시기(일종의 러브샷) 등에서 그 유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지금 술자리의 모습과 유사한 면이 많아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이렇듯 술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친숙한 기호식품중의 하나였다. 우리 중 누군가는 제사가 끝나고 난후에 할아버지께서 주시던 음복주의 맛을 기억할 것이며 동구 밖 양조장으로 술심부름을 하던 중에 몰래 마시던 막걸리의 몽롱함을 기억할 것이다. 술에 대한 유별난 애정은 지금의 술자리로 이어져 술잔을 돌리고, 다양한 폭탄주를 제조하며 개개인의 술에 대한 감수성은 무시되어 강권하는 유별난 음주문화로 이어졌다. 좀 부끄러운 음주문화가 아닐 수 없다.

도에 지나쳐서 나쁜 것이 어디 술뿐이겠냐 마는 잦은 술자리와 잘못된 음주습관은 정말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여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해치고 나아가서는 사회적, 경제적 손실을 야기한다. 술은 이성적 판단과 사고를 담당하는 대뇌피질에 영향을 미쳐 판단을 흐리게 하고 이성에 눌려 있던 본능적 충동과 공격성향을 증가시킨다. 이런 이유로 술은 각종 사건, 사고, 범죄의 원인중 하나로 지목되는 요주의 대상이다.

하루 한잔 정도의 적포도주는 혈관의 산화를 막아서 심뇌혈관 질환을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올해 8월 흥미로운 대규모 연구결과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술지인 란셋지(Lancet)에 발표되어 이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1990-2016년 사이 195개국 300만 명의 음주습관과 사망률을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음주량이 증가할수록 사망률도 비례적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더욱 중요한 것은 아무리 소량의 알코올이라 하더라도 건강을 해치지 않을 만큼의 안전한 수준의 섭취량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술을 사랑하는 주당들에게는 더 없이 큰 실망을 가져다주는 연구결과가 아닐까 한다. 앞으로 이 연구결과에 논란의 여지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과음이 건강을 해친다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조금도 없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금주, 절주하고 잘못된 음주습관을 개선하여 그 부작용을 최소화 해야겠다. 혼술(혼자 마시는 술)은 지양하고, 원샷은 피하고, 가급적 잔은 2-3 번에 나누어서 마시도록 한다. 공복 시 음주는 피하고 안주와 같이 하며, 술과 함께 물을 자주 섭취하여 탈수를 피하는 것이 좋다. 혹시 과음하였다면 3-4 일 이상의 휴식기를 가지도록 한다. 또한 년1회 이상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시행하여 술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질환유무를 조기에 확인하도록 한다.

지난달 23일 청소년에게 술·담배 심부름 시키면 최고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도록 하는 청소년 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동월 28일에는 음주운전의 처벌기준과 처벌내용이 강화된 ‘일명 윤창호법’ 이 통과되어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잘못된 음주문화와 과음의 부작용으로부터 오랫동안 속앓이 해온 우리 사회를 치료하고자하는 우리 모두의 결연한 의지일 것이다.

인구(人口) 에 회자되는 말로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고 다음에는 술이 술을 먹고 끝내는 술이 사람을 먹는다’ 라고 하였던가? 분주한 연말연시에 자칫 잘못하여 술에 잡혀 먹히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단단히 하여야 할 것이다.
 
진주세란병원 진료부장 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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