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학살에 관한 구술기록단을 구성하자
민간인 학살에 관한 구술기록단을 구성하자
  • 경남일보
  • 승인 2018.12.1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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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경남작가회의 회원)
3·15의거기념사업회는 2001년, 6명의 지역시인들로 편집위원회를 구성하여 ‘너는 보았는가 뿌린 핏방울을’이라는 제목의 3·15의거 기념시선집을 출간했다. 163명의 시 210편이 실려 있다. 강주성 회장에 의하면 이 책에는 생생한 그날의 핏방울이 묻어 있는 시와 희생에 대한 슬픈 찬가와 쿠데타 이후에 슬그머니 목소리를 낮추는 비겁한 시인들의 혼미한 시 그리고 미래를 열어갈 미체험 세대들의 시편까지 망라하여 실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3.15의거에서 희생된 영령들에게 바치는 추모곡이다.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4구역 철거 현장에서, 제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망루에 올라 몸을 떨며 시위를 하던 다섯 사람과 경찰 한 사람이 불에 타서 숨진 참사가 일어났다. 이 참사 앞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시인, 소설가, 비평가 192명이 각기 한 줄의 선언을 써서 ‘작가 선언’을 6월 9일, 발표하였다. 이 선언은 ‘이것은 사람의 말’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되었다. 작가들은 7월부터 용산참사 현장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하였고, 각종 매체에 릴레이 기고를 시작하여 헌정문집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를 발간했다.

2013년부터 대구경북작가회의는 ‘10월 문학회’와 함께 매년 시월항쟁 기념시첩을 발간하고 있다. 10월 항쟁은 엄혹했던 시절에 우리의 역사가 경험한 가장 가혹하고 잔인한 참사였다. 지금도 여전히 아픈 속을 처절하게 삭히고 있는 유족들과 소통하고 감추어진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대구지역의 작가들이 나서서 시집을 만들고 학살현장을 순례하고 있다. 그동안 출판된 시집의 제목은 ‘저렇듯 퍼렇게 살아내야 하리라’, ‘10월은 계속되고 있다’, ‘역사는 이렇게 남아있다’, ‘밤의 골짜기를 건너’, ‘끝나지 않은 식민지의 시월’ 등이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언제나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만 글 쓰는 사람이 된다’고 하였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난 뒤였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몸부림을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작가들은 한 명씩 한 명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고가 아닌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서 시민기록위원회를 만들고 작가기록단을 구성했다. 이들은 결코 쉽지 않은 240여 일간의 유가족이 겪은 이야기들을 기록하였다. 분향소에서, 팽목항, 광화문, 국회, 청운동 등에서 가족을 만나면서 작가들은 사회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결코 남이 아니고 결국은 자신의 모습임을 깨닫게 되었다. 아파서 한 줄도 기록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인터뷰 하는 동안에 아픔을 견디는 부모들이 있었기에 이들도 겨우 기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기록들이 모여 유가족의 육성기록집인 ‘금요일에 돌아오렴’으로 출간되었다. 글 쓰는 이들의 역할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례이다. ‘문학동네’ 편집위원회는 계간 ‘문학동네’ 2014년 여름호와 가을호에 게재된 글을 모아서 단행본 ‘눈먼 자들의 국가’를 출간하였다. 소설가 김숨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소설 ‘흐르는 편지’, ‘한 명’과 위안부 피해자 증언집 두 권을 펴냈다. 김숨은 그들이 자기에게 말을 걸어 왔다라고 한다. “소설가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존재들에게 시선을 주고 그에 대해 쓰는 사람인 것 같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전혀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경남지역에는 6·25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죽은 수천 명의 민간인 학살문제가 있다. 그 유족들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였다. 자신의 신분을 감추어야 했고 부모 없는 슬픔을 삼켜야 했다. 지금 그들은 나이가 많아서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들이 경험한 한국현대사의 아픔을 구술로 기록해야 한다. 글 쓰는 사람들이 나서서 구술기록단을 하루빨리 구성하고 행정에서도 관심가져야 할 일이다.


전점석(경남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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