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강주룡을 위하여
마지막 강주룡을 위하여
  • 경남일보
  • 승인 2018.12.2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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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남(시인, 논술강사)
정진남

너무 재미있었다. 박서련 작가의 소설 ‘체공녀 강주룡’에 대한 진주여성민우회 여성학 책 읽기 모임 회원들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실존 인물 강주룡의 가난하고 힘겨운 투쟁으로 일관된 노동자로서의 삶은 비장하고 초연하다. 강주룡이 진짜가 아니라 가짜였다면, 진짜 허구의 인물이었다면 완벽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소설을 무작정 순수하게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강주룡은 1930년대 평양의 고무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다. 그는 사용자의 임금삭감에 저항하여 평양 을밀대 지붕위에 올라가 농성을 한다.

우여곡절 끝에 공장주의 임금삭감 철회를 이끌어 내고 끝까지 투쟁하다 삶을 마감한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고공 농성을 한 노동 운동가이다. 작가 박서련은 강주룡에 대한 당시의 신문 기사를 읽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진주여성민우회 여성학 책읽기 모임에서 ‘체공녀 강주룡’을 읽게 된 계기는 ‘한국 근대 여성사’의 ‘일제 강점기 제사 여공과 고무 여공의 삶과 저항을 통해 본 공업 노동에서의 민족 차별과 성차별’을 접하면서이다.

용어와 환경이 지금과 달라 까다로운 면이 있어 실제 이 시기를 소설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체험해보자는 취지였다.

당시와 지금은 정치, 문화, 경제, 사회 등 생활 전 분야에 걸쳐 삶의 질이 상당히 높아졌다.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죽 변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다’는 것을 두 책은 알려준다.

특히 노동자에 대한 차별, 여성 노동자의 이중고, 어린 여성 노동자의 삼중고는 여전하다.

임금 격차, 근무 형태와 시간, 복지 혜택 등이 차별의 대표적인 요소인데, 자료를 통해 볼 때 일제 강점기와 지금의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일제 치하에서 치열한 삶을 살다 간 노동운동가 강주룡, 떳떳하게 자기 손으로 밥벌이를 하며 꿋꿋하게 꿈을 키워가는 여성이 겪어야 했던 좌절의 고통은 우리 사회의 고통이자 역사의 고통이다. 더 이상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고공농성은 타협과 신뢰가 깨졌을 때의 마지막 수단이다. 지금도 냉혹한 현실에는 고공농성 중인 파인텍 노동자들이 있다.

동국대 캠퍼스의 학생은 며칠 전 고공농성을 끝냈다. 이것이 소설이라면 쓰여지지 말아야 할 소설이다. 이러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80년 전 강주룡이 아직도 고공에서 분노의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정진남(시인,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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