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무고한 학생을 벌주는 교육부
[경일포럼] 무고한 학생을 벌주는 교육부
  • 경남일보
  • 승인 2018.12.2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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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섭(부산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예전 학교에서는 교사가 학생에게 벌주는 사례가 많았다. 숙제를 하지 않거나 떠들거나 지각한 학생은 대부분 벌을 받았고 심한 경우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체벌도 받았다. 그러나 인권이 강화된 21세기 한국의 학교에서는 벌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교사가 학생을 체벌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화장실 청소도 학생이 하지 않는다. 연구를 통해 벌이 학생에게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학습이론에 따르면, 학생의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줄이기 위해 혐오자극을 부가하는 벌과 학생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빼앗는 벌 두 가지가 있다.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줄이기 위해 학생에게 체벌을 가하거나 화장실 청소를 시키는 것처럼 혐오자극을 부가하는 벌을 정적 벌이라고 부른다. 나쁜 행동을 줄이기 위해 학생에게 쉬는 시간을 주지 않거나 좋아하는 활동을 못하게 하는 것은 부적 벌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나쁜 행동을 줄이려고 벌주는 것이 아니라 목표로 삼는 특정한 나쁜 행동을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 벌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부는 이러한 벌의 원칙도 모른 채 벌을 준다.

최근에 수능시험을 마친 고3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이용하여 강릉으로 여행 갔다가 펜션에서 이산화탄소에 중독되어 여러 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사고가 발생하자 일부 언론과 방송은 체험학습 제도를 문제 삼았고 이에 교육부 장관은 체험학습을 정밀히 점검할 것을 요구하였다. 실제로 일부 교육청은 체험학습을 자제하도록 권고하거나 아예 금지시켰었다.

이러한 조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체험학습을 금지 당한 고3 학생들은 좋아하는 활동을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부적 벌을 받은 것이다. 많은 학생들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고 벌을 받게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피해학생의 학부모들도 교육당국으로부터 벌을 받게 되었다는 점이다. 자녀를 잃은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들 때문에 나머지 학생들이 벌 받는 것을 본다면 마음이 불편할 것 같다. 아무런 죄 없이 체험학습을 못하게 된 학생들이 불평할 때마다 학부모들은 본의 아니게 죄책감마저 느끼게 될 것이다.

이처럼 교육부가 무고한 학생들에게 벌을 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때에도 교육부는 수학여행을 금지시켰다. 희생된 고등학생들과 그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또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수행여행을 취소한 것이 아니라 교육부에서 금지하였기에 학생들은 벌로 느꼈을 것이다.

그 보다 2개월 전인 2014년 2월에 부산외대 학생이 다수 사망한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가 있었다. 교육부는 어김없이 2015년에 대학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등 각종 행사를 학생들이 주최하지 못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이러한 교육부의 조치는 마치 대학생들의 잘못으로 그러한 사건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에 많은 대학은 외부 오리엔테이션을 허가해 주지 않고 학내 행사로 전환하였다. 그 결과 벌의 효과가 나타나서 대학생들이 주도하는 형태의 신입생 환영회 및 각종 행사는 사라져가고 대학생들의 학교행사 참여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우리는 학생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수업방법을 도입하였고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할 것을 요구한다. 공부만 하다 자신의 진로와 정체감을 확립하지 못한 채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증가하자 중등학교에서는 현장체험학습을 도입하였다. 덕분에 많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수능시험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체험학습을 적극 활용한다. 그런데 교육부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사고를 당한 학생의 학부모에게 벌주고 그것도 모자라서 피해 학생의 친구들마저도 벌하려고 한다. 이러니 교육부가 필요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가보다.
 
김정섭(부산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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