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없는 사람들’
‘영혼이 없는 사람들’
  • 경남일보
  • 승인 2018.12.2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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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객원논설위원·진주교대 교수)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존재성의 근본이 의도성을 가진 타자(他者)에 의해 부정될 때 우리는 그 타자를 ‘영혼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고, 그러한 사회를 ‘영혼이 없는 사회’라고 한다. 여기서 그 타자는 개인일 수 있고 집단일 수도 있다. 그런데 대개 그 타자는 정치권력이 의도하는 바를 충실히 이행하는 하나의 매개체의 성격이 강하다. 이것은 정치권력의 행사가 집중되고 경직되게 운영되는 사회에서 읽혀질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의 하나다.

세월호 구조 과장에 군(軍)이 대거 투입되었고, 그런 상황에서 모든 경우의 상황을 의심해야 하는 기무사는 그 가운데 한 영역인 민간 동향도 파악할 수밖에 없다. 기무사 세월호 사찰관련 수사는 이러한 점이 고려되어야 하고 이러한 근간이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실제 수사과정에서 이러한 줄기가 수사의 큰 변수로써 작용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다 보니 이재수 전 기무사 사령관 투신 자살과 같은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정권이 바뀐다면 새로운 해석과 복권의 여지가 충분히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이 사건과 더불어 얽혀 있는 다른 문제 하나는 이 사령관 자살 이후에 보였던 군(軍)의 행태가 우리 사회에서 군이 영혼이 없는 한 집단으로 비쳐질 수 있는 개연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전 사령관의 한 지인이 기무사의 후신인 안보지원사에 사령관 조화를 요청했는데 ‘안보지원사는 이제 기무사와 단절된 조직이기 때문에 조화를 보낼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빈소에 현역 장성들은 한 사람도 빈소에 조문을 하지 않았고, 정경두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도 일부만 조화를 보냈을 뿐 일절 조문을 하지 않았던 사실에서 읽혀 질 수 있는 것들이 그것이다. 언론에서는 그 상황을 ‘군 수뇌부 조화도 청와대에 물어 보고 오케이 사인을 받은 뒤 보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가장 기본적인 인륜지사까지 권력 눈치를 보는 듯한 군 일부 관계자들의 행태는 진급과 인사같은 현실적 변수가 얽혀 있다고 하더라도 엄밀한 의미에서 군 일부의 원천적 자기 부정의 한 모습인 것이다. 이 사령관의 공(功)을 공(功)으로 읽어주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공(功)에 대한 자기부정이기 때문이다. 공관병 갑질 의혹에 대해서는 도의적인 책임과 비난은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박찬주 전 2군사령관의 경우도 이러한 흐름에서 읽혀질 수 있는 부분이 없지 않다. 공관병 갑질 논란’을 일으켜 군 검찰 수사를 받게 된 뒤 지인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첫 포토라인 서던 날 국방부로부터 ‘군복을 입으라’는 강요를 받았던 사실이 그것이다. 군복을 입지 않기 위해서 경황이 없어 군복을 대구에 두고 왔다고 했지만, 군 검찰은 ‘밤에라도 올려보낼 테니 꼭 입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고 박 전 대장은 밝히고 있다. 군 제복에 담긴 명예 보호와 관련해서 이러한 군 검찰의 행태는 군(軍)의 자기 부정에 다름 아니다. 군 제복의 명예는 군이 스스로 지켜야 한다. 선진국에선 군 고위 장성의 비위가 발견되면 우선 신분을 전환해 처리하는 관례가 있다. 이것은 ‘실정법의 위반’과 ‘군제복의 명예’ 사이에 이해(理解)의 절충 공간이 지켜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한 전직 검사장은 ‘현직 육군대장을 몇 달간 잡아가두고 잡범인 양 온갖 수모를 주고, 그런 식으로 다루는 것이 특수조직인 군 사기와 조직기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얼마만큼 고민하면서 그렇게 했을까 자괴감이 든다’고 고백하고 있다. 게다가 국내 탈원전 정책과 원전 대외수출은 별개라는 이치에 안 맞는 말로 탈원전 정책의 자기 부정은 도를 넘고 있다. 합리적 의심이 아쉬운 사회다.


이재현(객원논설위원·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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