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플러스(211) 벽화산
명산플러스(211) 벽화산
  • 최창민
  • 승인 2018.12.27 08: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내 지자체 중 이름 난 산이 많은 곳이라면 거창·산청·함양군 정도일 것이다. 반대로 이렇다 할 산이 별로 없는 곳은 의령지역이다. 의령에서 유명한 산은 자굴산과 한우산 미타산 정도가 생각난다. 하지만 의령에 등산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숨은 벽화산이 있다.

벽화산은 군청소재지에서 서남 방향 하리에 위치하며 해발 526m의 주봉과 제2봉으로 불리는 512m봉으로 구성돼 있다.

한우산 미타산 자굴산이 군청소재지에서 북동쪽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것에 비하면 이 산은 남해고속도로와 국도 등이 연접해 있어 접근성이 매우 좋다. 또한 이 산에는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흔적인 벽화산성(경남도 기념물 64호)이 있어 정비만 잘 한다면 아이들의 현장교육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임진왜란 때 망우당과 의병들은 북서쪽으로 진출하려는 왜구를 맞아 벽화산에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뜨거운 피로 이 땅을 지켜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인 유적지임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문화재 관리는 그리 마뜩잖다. 빛바랜 간판에다가 등산로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군청 소재지에서 가까운 곳에 있고 역사적인 성지인 만큼 아이들의 교육적인 측면과 시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힐링처라는 것을 고려하면 등산로 정비와 유적지 관리는 필요한 부분이다.

 
등산로: 중리 운곡마을 주차장→척곡마을 건너→임도→임도 준공비→벽화산성→무덤군→349m봉→수암사 갈림길→벽화산정상→벽화산 2봉 산불감시초소→임도→운곡마을회귀. 10km에 휴식시간 포함 4시간 30분소요.

의령군 의령읍 중리 운곡마을 입구 마을회관이 출발지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으므로 척곡마을 방향으로 100m정도 더 진행한 뒤 주차장을 찾으면 된다. 척곡마을 까지는 아스팔트로를 따라 가야한다. 마을 회관 맞은편 오른쪽에 등산로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개울을 건넌 뒤 임도를 따라 산에 오를 수 있다.

고불고불 몇 굽이를 돌아 30여분 정도 올라가면서 뒤돌아보면 아침 안개가 내려앉은 척곡·운곡마을 뚝묘산의 정경이 다가온다. 뚝묘산 이름이 재미 있는데 말 그대로 ‘뚝떨어진 묘지’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독립된 작은 동산이다.

길가에 ‘준공기념’이라는 바위표지석이 눈길을 끈다. 산 중 임도 1.7km개설을 위해 사재를 출연한 재일교포 사업가 유광웅 씨의 고귀한 뜻을 기려 1988년 2월 손태병 의령군수가 세운 돌비이다.

내용을 보면 ‘정상 부근에 있는 가야시대 고성(古城)을 임진왜란 때 곽재우장군이 의병들과 함께 수축한 뒤 몰려오는 왜적을 무찌른 호국의 얼이 깃든 전승지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돌보지 않고 방치되다 시피 한 것이 안타까워 이를 보존하고 정화하기위해 임도를 개설했다’고 썼다.

국가가 아닌 개인 사재를 출연해 임도를 개설한 것이 이채로웠다.

임도를 기점으로 평평한 길이 이어지다가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 100m지점에 ‘벽화산성동문지’가 있다. 돌기둥을 세워 성의 동문이 있었던 곳임을 알리고 있다. 그 아래 사람이 기거하는 것으로 보이는 비닐하우스로 만든 작은 거처가 보였다. 풍찬노숙(風餐露宿), 추운 겨울 이곳까지 올라와 사는 이유가 궁금해 다가가 보려했지만 포기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돌아 나와 다시 오르면 동그마니 산죽 밭이다. 모든 것이 회색빛인 한겨울에 한 무더기 싱그러운 초록숲이 취재팀을 반긴다. 그 속에 벽화산성 일부로 보이는 돌담이 숨어 있었다.

곧이어 갈림길, 오른쪽에 벽화산성이다. 최근에 비교적 반듯하게 자른 돌을 가져다가 쌓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고풍스럽지는 않았다. 성지였음을 알리는 입간판은 글자를 제대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낡아 있었다.

벽화산성은 가야 때 쌓은 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조 22년(1589) 임진왜란 직전 의령읍성을 쌓으면서 전란에 대비해 부분적으로 고쳐 쌓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망우당 곽재우가 고쳐 쌓은 산성으로, 의병을 거느리고 수 천명의 왜적을 무찔렀던 전승지로 유명하다. 그 뒤 고종 13년(1876)에 크게 고쳐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주변마을 일부지역에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삼국시대 무덤들이 발견됐다고 한다.

성돌을 밟고 따라 올라갈 수도 있지만 돌아 나와 그냥 희미한 길을 따라 오를 수도 있다. 등산로 옆에 수백여기의 이름 없는 묘지가 산재해 있다.

이 묘지들은 얼핏 망우당과 의병들이 왜군을 맞아 전쟁을 벌일 때 산화한 사람들로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일제 때 공동묘지가 만들어지면서 민간인들의 묘지가 대거 유입됐다.

묘지 사이를 피해서 갈지 자 걸음으로 349m봉우리에 올라선다. 키가 큰 숲속의 봉우리는 전망이 없다. 고도를 낮추면 묘지는 사라지고 소나무 숲이 등장한다. 솔숲임에도 등산로에는 갈잎이 떨어져 쌓여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주변을 휘둘러 봐도 온통 송림뿐이다.

수암마을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수암사가 있다. 이 절은 1997년 용국사로 창종했으나 2012년 수암사로 명칭이 바뀌었다. 절 입구에는 옥석으로 조각한 높이 2.8m짜리 333개의 관음보살상이 길게 늘어 서 있다. 총길이 650m에 달하는 이색적인 코스다.

갈림길을 지나면 이름 없는 봉우리에 사각형으로 생긴 특이한 묘지가 나온다.

석물도 차린 이 묘지 앞에는 희선대부 동지중추부사 합천휘겸선지묘로 기록돼 있었다. 조선 말기 때 중추부의 2품 벼슬을 한 합천인으로 보였다.

완만한 경사의 오솔길 끝에 의령교육청 산악회가 세운 정상석이 반긴다. 벽화산 정상이다. 두시간에 가까운 오름길의 수고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느낌이다.

정상에서는 역시 전망이 별로 없다. 생각 외로 키가 크고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가 많다. 나무에 가려 조망이 별로 없어도 숲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을 수 있다.

곧바로 고도를 낮추면 주변 전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임도를 만나면 임도를 따르지 않고 곧장 산으로 올라 송전탑 밑으로 오름길을 재촉한다.

헬기장을 지나고 벽화산 제2봉으로 불리는 512m봉에 올라선다.

이곳에서 의령군 일대 전망이 트인다. 정면에 방어산 에서부터 여항산, 적석산, 뒤로는 한우산,자굴산이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잡풀을 베고 있던 산불감시요원이 말을 걸어왔다. “의령에 좋은 소식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산에만 오가서 세상 소식을 잘 못 듣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맞은편 산불감시카메라를 작동하는데 쓰이는 태양전지판을 가리키며 “추위가 만만찮아 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했다.

제2봉에서 하산한 뒤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가 산중으로 접어들면 출발지인 운곡마을로 연결된다.

벽화산은 등산로 정비가 잘 돼 있지 않지만 사전에 산행지도를 챙겨서 출발하면 길을 잃지 않고 힐링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문화유적지를 둘러보고, 하산 후에는 수암사 관음보살상 산책길를 걸으면 부처 같은 마음까지 생겨난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임도 준공기념비. 개인 사업가가 벽화산성에 보다 더 쉽게 접근할수 있도록 하기위해 세웠다.
벽화산성동문지
산죽사이로 난 등산로
 
벽화산성
송림
 
뚝 떨어진 묘지같은 느낌이 드는 운곡마을 옆 뚝묘산. 등산로는 운곡에서 척곡을 지나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벽화산 2봉에 설치된 산불감시카메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