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84>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84>
  • 경남일보
  • 승인 2019.01.0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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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도 섬기행
그리움의 섬, 사량도

뭍은 모두 바다를 향해 뻗어있고, 섬은 모두 뭍을 향해 서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들어 부쩍 많은 사람들이 섬을 찾는다. 그 섬 어딘가에 아름다운 비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고, 옥색 물결 위에 낭만이 출렁이고 있을 것 같은 곳이 섬이다. 우리가 사는 곳과는 다른 세상에 대한 동경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섬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섬이 뭍을 향해 서 있듯이 섬주민들은 육지가 꿈이요, 그리움이다. 섬은 뭍에게, 뭍은 섬에게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을 찾아 떠나는 사량도 섬 기행,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반 수강생들과 함께 떠났다.

삼천포항 팔포에 있는 여객선터미널에서 9시에 출발, 40분만에 사량도 윗섬 내지항에 도착했다. 맨 먼저 돈지초등학교에 있는 사랑나무(연리목)를 찾아갔다. 사량도와 사랑나무, 절묘하게도 어감이 너무나 닮아있다. 폐교가 된 학교 한켠에 250년이 넘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밑동부터 하나가 되어 서 있었다. 자세히 봐야 두 그루가 붙어 한 나무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침 고구마 밭 뒷정리를 하고 계시던 할아버지 한 분으로부터 학교와 사랑나무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돈지초등학교 1회 졸업생이라 했다. 사랑나무가 인연이 되어 할아버지 댁에 있는 고구마를 여러 문우들이 사 가지고 왔다. 사랑나무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세 섬사람과 뭍사람 사이 교감을 갖게 해 주었다.

돈지에서 섬 일주도로를 따라 금평 마을에 있는 최영 장군 사당을 찾았다. 고려말 때, 이곳 사량도에도 왜구의 침입이 잦았는데 최영 장군께서 이곳에 진을 치고 왜구를 격퇴시킨 것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고 한다. 전국 어느 곳 할 것 없이 왜구들의 폐해가 닿지 않은 곳이 없었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슬프디 슬픈 옥녀봉 전설

사량도 윗섬에는 100대 명산 중의 하나인 지리망산이 있는데, 능선 끝 봉우리가 옥녀봉이다. 옥녀봉에는 애절한 전설이 하나가 전해 온다. 먼 옛날 옥녀봉 아래 있는 작은 마을에 가난한 부부가 옥녀라는 예쁜 딸과 함께 살았다. 가난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한 어머니는 옥녀를 낳은 뒤 병으로 세상을 등지고, 슬픔에 젖어있던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고아가 된 옥녀를 이웃에 홀로 살던 홀아비가 불쌍히 여겨 자기 집으로 데려가 동냥젖을 얻어 먹이며 잘 보살펴 키웠다. 나이 열여섯이 된 옥녀는 미모가 아주 뛰어나 주변에 소문이 자자했다. 지금까지 길러준 의붓아버지가 옥녀에게 이상한 행동을 보이자 옥녀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묘책을 세운다. ‘내일 새벽 날이 밝기 전에 상복을 입고 멍석을 뒤집어 쓴 채, 풀을 뜯는 시늉을 하면서 송아지 울음소리를 내며 저 옥녀봉으로 네발로 기어서 올라오면 아버지의 요구를 들어 드리겠다’고 한다. 옥녀봉에 먼저 가 있던 옥녀가 상복을 입고 짐승의 모습을 한 의붓아버지가 벼랑을 기어 올라오는 것을 보는 순간, 옥녀는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리고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뛰어내렸다. 옥녀봉 밑에는 사철 붉은 이끼가 끼어있는데 주민들은 이것을 옥녀의 피라고 믿고 있다. 외진 섬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근친상간과 타락한 동물적 본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 생겨난 전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詩를 사랑하는 마을’, 능양마을

맛있는 갈치조림으로 점심을 먹은 뒤, 섬기행의 주목적인 문학기행을 위해 사량대교를 지나 아랫섬 양지리 능양마을을 향했다. 능양마을은 2010년에 ‘좋은 세상’이 국내 처음으로 이곳을 ‘詩를 사랑하는 마을’로 지정하고, ‘詩앗문고’라는 이름으로 각종 문학도서도 전달하는 ‘찾아가는 詩앗나눔’ 행사를 가진 곳이다. 한편 극단 ‘벅수골’의 도움으로 마을의 설화와 전설, 그리고 주민들의 마음속에 묵혀둔 애환과 사연들을 시로 표현하고 시화전을 열기도 하는 등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아름다운 정서를 함양하는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생업에 바쁜 섬주민들이다 보니 지속적으로 시쓰기 작업을 하기가 어려웠고, 관계당국에서의 지원도 끊김으로써 지금은 창작활동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능양마을 쉼터에는 박재두 시조시인의 시조 ‘별이 있어서’를 새긴 시비가 서 있었다. 박재두 시인은 필자와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다. 시와 더불어 삶의 품격을 느낄 수 있었던 분이셨다. 시비 앞에서 술을 한잔 올리고 함께 했던 지난날들을 잠깐 떠올렸다. 그리고 쉼터 바로 옆에 있는 가게에 가서 박재두 시인의 생가를 묻자, 바로 그 가게의 안채가 시인의 생가라고 했다. 민박을 겸하고 있는 주인은 집을 새로 리모델링하려고 했지만 가끔 찾아오는 탐방객들을 위해 고치질 않고 그대로 두었다고 했다. 한편 차한수 시인과 차영한 시인도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능양마을을 문향(文鄕)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연줄 멕일 사금파리 찧고 빻은 가루별이 서둘다 발이 걸려 하늘에 쏟은 별이 한뎃잠 머리 위에도 사금파리 빛나던 별이 가난한 지붕머리 지켜주는 밤이 있어서 별 사이를 누비며 날으는 꿈이 있어서 눈물 속 하늘에 뜨는 행복이 있어서

-박재두 시인의 시조 ‘별이 있어서’ 전문-

능양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맑은 개울물에 놀던 작은 물고기들이 낯선 발걸음 소리에 분주히 몸을 숨겼다. 쟤들이 밤이 되면 별이 될라나, 작은 섬마을이 ‘詩를 사랑하는 마을’로 거듭 태어나 별이 되어 세상을 밝게 비춰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섬사람들의 꿈인 뭍으로 되돌아왔다.

/박종현(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돈지초등학교에 있는 연리목.
상,하도를 잇는 사량대교.
우뚝 선 가마봉, 지리망산, 옥녀봉의 모습.
최영 장군 사당.
능양마을 쉼터에 있는 박재두 시인의 시비.
박재두 시인의 생가.
해풍을 막아주는 능양마을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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