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시인)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봤다. 신문을 보는 나이가 얼마일까 하는. 나의 경우를 보면 아마도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부터 신문을 보았을 것 같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 같다. 요즘은 대부분 인터넷으로 모든 것들을 하니 굳이 종이로 된 신문을 보지 않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매일 신문을 받아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필자가 왜 신문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지금부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누군가는 이 지면을 통해 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산, 숲과 관계된 일을 하기에 수시로 산에 간다. 숲에서 하는 일이 모두 공부기에 더없이 가깝게 지낸다. 30대에는 내가 죽을 때까지 우리나라의 산들을 다 다녀보리라 다짐도 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산들이 얼마나 많은 지 매일 간다고 해도 죽을 때까지 다 갈 수 없을 것이란 수치에 그만 포기했다. 그리곤 시간이 날 때마다 가까운 산에 갔다. 그저 산이란 좋은 곳이기에 말이다. 걷다가 지치면 앉아 쉬면서 새들 소리나 숲에서 나는 바삭 소리에 놀라는 나 스스로의 마음도 추스르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산에 자주 가는 것은 아니었다. 일 때문에 가는 산은 그저 현장이고 그렇다보니 감흥은 새롭지 않았다. 일이라고 생각한 순간 산은 그저 일터에 불과했다.
가까운 지리산에라도 가려면 생각을 여러 번 해야 했다. 마치 작심하고 떠나야 할 것 같은 생각에서다. 그러나 막상 가보면 그렇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피식 웃음도 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 해 동안 산다운 산에는 가보지 못했던 것 같다. 오르기 위해 가는 산이 없었던 것이다. 무작정 오르기 위해 가는 산이라면 좀 더 여유도 있을 거며, 이런 저런 생각도 내려놓을 수 있을 텐데 하면서.
그래서 문득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00대 명산이 있다는 것을. 매일 갈 수도 없고, 또 주말마다 갈 수도 없으니 그래도 여유 있게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면 어떨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렇게 따지면 1년에 10군데, 100명산이라면 10년이 걸릴 일이다. 100명산인데 뭐 10년씩이나 걸려!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냐, 그 정도면 여유 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산에 가는 일이 여유가 없다면 산은 수박 겉핥기에 그치고 말뿐 산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듣지 못한 새소리도 선명하게 들릴 것이며, 바라보이는 나무와 숲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명산에 간다면 계절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좋을까. 더구나 명산이니 말 그대로 이름난 산,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니까 말이다. 산이 다 좋다고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느끼기에 다르니 말이다.
10년에 걸릴 것이라면 그보다 빠르게 완성될 수도 있고, 아니면 좀 더 늦게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그때마다 한 산 한 산을 오르고 즐기며 나의 건강은 좋아질 것이고 또 오감의 즐거움은 또 어떻게 좋을까.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 좋아진다. 그 산 주변의 장터도, 그 산 주변의 사람 사는 마을도 구경하면서 여유를 가진다면 한 달 한 번의 사치(?)는 소박한 사치가 아니련가. 먼 곳이라면 1박 2일도 무탈할 것이다. 그때에는 작은 계획도 세울 것이다. 그 산에 가기 위해 기대하는 시간도 설레는 시간도 즐거울 것이다.
꼭 산꼭대기까지 오르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적당히 가고 싶은 곳까지 가는 것으로 마음을 잡는다면 부담은 줄어들 테고, 그렇게 하다 보면 자유로운 산행이 될 것이다. 꼭 어떤 다짐을 새해에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나 그런 다짐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질 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은 더 단단해지고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올해 나는 그런 다짐을 해 보는 것이다. 앞으로 10년 동안 우리나라의 산천을 돌아다닐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그것은 숙제 같은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여유 있을 때 가면 되니까 말이다. 가까운 산부터 하나 둘 가보는 것이다. 가본 곳도 있을 거고, 안 가본 곳도 있을 테니 낮선 곳에서의 그 낯섦은 또 얼마나 기분 좋고 신비할 일인가.
필자가 왜 서두에 신문을 구독해서 보기 시작한 나이를 이야기 하는 이유를 독자 분들은 아실 것이다. 100대 명산을 찾아야 할 나이가 아마도 신문을 읽고 있는 나이가 아닌가 생각해서다. 전문 산악인이 아니라도 그저 가까운 산부터 꼭 꼭대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앞으로 10년 아니 그 이상이어도 우리나라의 100대 명산에 들어보지 않으시련가. 그걸 새해 화두로 삼고 실행해 보지 않으시련가.
나는 산, 숲과 관계된 일을 하기에 수시로 산에 간다. 숲에서 하는 일이 모두 공부기에 더없이 가깝게 지낸다. 30대에는 내가 죽을 때까지 우리나라의 산들을 다 다녀보리라 다짐도 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산들이 얼마나 많은 지 매일 간다고 해도 죽을 때까지 다 갈 수 없을 것이란 수치에 그만 포기했다. 그리곤 시간이 날 때마다 가까운 산에 갔다. 그저 산이란 좋은 곳이기에 말이다. 걷다가 지치면 앉아 쉬면서 새들 소리나 숲에서 나는 바삭 소리에 놀라는 나 스스로의 마음도 추스르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산에 자주 가는 것은 아니었다. 일 때문에 가는 산은 그저 현장이고 그렇다보니 감흥은 새롭지 않았다. 일이라고 생각한 순간 산은 그저 일터에 불과했다.
가까운 지리산에라도 가려면 생각을 여러 번 해야 했다. 마치 작심하고 떠나야 할 것 같은 생각에서다. 그러나 막상 가보면 그렇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피식 웃음도 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 해 동안 산다운 산에는 가보지 못했던 것 같다. 오르기 위해 가는 산이 없었던 것이다. 무작정 오르기 위해 가는 산이라면 좀 더 여유도 있을 거며, 이런 저런 생각도 내려놓을 수 있을 텐데 하면서.
그래서 문득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00대 명산이 있다는 것을. 매일 갈 수도 없고, 또 주말마다 갈 수도 없으니 그래도 여유 있게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면 어떨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렇게 따지면 1년에 10군데, 100명산이라면 10년이 걸릴 일이다. 100명산인데 뭐 10년씩이나 걸려!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냐, 그 정도면 여유 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산에 가는 일이 여유가 없다면 산은 수박 겉핥기에 그치고 말뿐 산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듣지 못한 새소리도 선명하게 들릴 것이며, 바라보이는 나무와 숲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명산에 간다면 계절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좋을까. 더구나 명산이니 말 그대로 이름난 산,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니까 말이다. 산이 다 좋다고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느끼기에 다르니 말이다.
꼭 산꼭대기까지 오르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적당히 가고 싶은 곳까지 가는 것으로 마음을 잡는다면 부담은 줄어들 테고, 그렇게 하다 보면 자유로운 산행이 될 것이다. 꼭 어떤 다짐을 새해에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나 그런 다짐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질 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은 더 단단해지고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올해 나는 그런 다짐을 해 보는 것이다. 앞으로 10년 동안 우리나라의 산천을 돌아다닐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그것은 숙제 같은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여유 있을 때 가면 되니까 말이다. 가까운 산부터 하나 둘 가보는 것이다. 가본 곳도 있을 거고, 안 가본 곳도 있을 테니 낮선 곳에서의 그 낯섦은 또 얼마나 기분 좋고 신비할 일인가.
필자가 왜 서두에 신문을 구독해서 보기 시작한 나이를 이야기 하는 이유를 독자 분들은 아실 것이다. 100대 명산을 찾아야 할 나이가 아마도 신문을 읽고 있는 나이가 아닌가 생각해서다. 전문 산악인이 아니라도 그저 가까운 산부터 꼭 꼭대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앞으로 10년 아니 그 이상이어도 우리나라의 100대 명산에 들어보지 않으시련가. 그걸 새해 화두로 삼고 실행해 보지 않으시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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